[법정스님 말씀]부모의 은혜를 아는가
불교말씀 2012. 7. 30. 23:06 |부모의 은혜를 아는가
부모를 위해 1백 자루의 칼로 제 몸을 쑤시며
1천 겁을 지내도 그 은혜에는 못 미친다
늙을 때까지 계행을 지니는 일 즐겁고
믿음이 뿌리 깊게 내리는 일 즐겁다
밝은 지혜를 얻는 일 즐겁고
온갖 나쁜 일 벗어남도 즐겁다.
<법구경, 333>
건강은 가장 큰 이익이고
만족은 가장 큰 재산이다
믿고 의지함은 가장 귀한 친구
열반은 최상의 안락이다
<법구경, 204>
* 열반의 원뜻은 죽음이 아니고, 온갖 번뇌와 갈등의 불길이 지혜에 의해서 꺼져버린 평온한 상태를 말한다. 그러므로 해탈의 경지가 곧 열반이다.
낯짝이 두꺼워 수치를 모르고
뻔뻔스럽고 어리석고 무모하고
마음이 때묻은 사람에게
인생은 살아가기 쉽다.
수치를 알고 항상 깨끗함을 생각하고
집착을 떠나 조심성이 많고
진리를 보고 조촐히 지내는 사람에게
인생은 살아가기 힘들다.
<법구경, 244~5>
* 얼핏 생각하면 앞뒤가 안 맞는 소리 같지만, 우리들의 현실상을 그대로 드러낸 말이다. 양심도 체면도 모르고 되는 대로 사는 인생이 편리하고 즐거울지 모른다. 그러나 거기에는 조금도 가치를 부여할 수 없다. 보다 높은 가치를 추구하면서 사람답게 살려고 하기 때문에 인생은 살기가 힘들 수밖에 없다. 살기 힘든 인생이기 때문에 그걸 극복하려고 의지적인 노력과 창조적인 활동이 뒤따른다. 세상일이 모두 마음먹은 대로 풀려나간다면 우선은 좋겠지만, 사람은 안이한 늪에 갇혀 지금보다 훨씬 타락하고 말 것이다. 이 세상을 사바(saha)세계라고도 하는데, '참고 견디는 세상'이란 뜻. 참고 견딜 만한 세상이기 때문에 거기 삶의 묘미가 있을 것 같다.
어머니의 은혜는 다음 열 가지로 나누어 들 수 있다. 첫째, 아이를 잉태하여 열 달 동안 온 정성을 기울여 지키고 보호해준 은혜. 둘째, 해산할 때 괴로움을 겪는 은혜. 셋째, 자식을 낳고 모든 근심을 잊는 은혜. 넷째, 입에 쓴 음식은 삼키고 단 음식은 아기에게 먹여주는 은혜. 다섯째, 마른 자리 골라 아이 눕히고 젖은 자리에 눕는 은혜. 여섯째, 때 맞추어 젖을 먹여 길러준 은혜. 일곱째, 똥 오줌 가려 더러운 것을 빨아주는 은혜. 여덟째, 자식이 먼 길을 떠나면 생각하고 염려하는 은혜. 아홉째, 자식을 위해 나쁜 일 하는 은혜. 열째, 늙어 죽을 때까지 자식ㅇ르 사랑해주는 은혜.
* <세설신어>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진나라 환온이 배를 타고 삼협이라는 곳을 지날 때, 그를 따라가던 시종 한 사람이 원숭이 새끼를 한 마리 붙잡았다. 어미 원숭이가 이 새끼를 못 잊어 슬피 울면서 강변을 따라오기 1백여리. 마침내 어미 원숭이는 애가 타서 배 위에 뛰어올라 기절해 죽었다. 사람들이 그 어미 원숭이의 배를 가르고 보니 찾아가 마디마디 끊어져 있었다. 자식을 사랑하는 어미 마음이 어찌 짐승이라고 해서 다를 수 있겠는가. 산 목숨을 괴롭히지 말 일이다. 죽이지 말 일이다.
태공은 이렇게 말했다. '효도하고 순종하는 사람은 자기도 다시 효도하고 순종하는 자식을 낳을 것이요, 불효한 죄를 범한 사람은 자기도 다시 불효한 자식을 낳을 것이다. 이 말이 믿어지지 않는다면 저 처마끝에 떨어지는 낙숫물을 보라. 방울방울 떨어져서 조금도 어기거나 옮기는 일 없이 제자리에 떨어진다.' 우리 속담에도, 콩 심은 데에 콩 나고 팥 심은 데에 팥 난다는 말이 있으렸다.
이와 같은 부모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어떤 사람들은 도리어 불효로써 부모를 괴롭히고 있다. 묻는 말에 대답이 불손하고 눈을 부라리며 욕설까지 퍼붓는다. 부모의 헐벗고 배고품을 모른체하며 저만 잘 입고 잘 먹으려고 한다. 이런 자들은 지옥이나 아귀, 혹은 축생의 세상에 떨어질 것이다. 부처와 금강신, 다섯 가지 신통력을 지닌 신선이라 할지라도 그를 구해낼 수 없다.
<부모은중경>
자기는 풍족하게 살고 있으면서
늙어 쇠약한 부모는 돌보지 않는
그런 사람이 있다
이것은 파멸의 문이다.
<숫타니파타, 98>
* 우리나라 옛 폐습으로 '고려장'이 있었다. 고구려 때에 늙은이나 병들어 쇠약해진 사람을 구덩이 속에 버려두었다가 죽은 후 장사지내던 습속이다. 동방예의지국의 일이라 그 시절 나름으로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을지 모르지만, 지금 생각하면 너무도 비인간적인 풍습이다. 자기를 낳아 길러준 부모가 늙고 병들어 짐스럽다고 해서 내다버렸다니, 후레자식들이란 표현만으로는 아무래도 모자란다.
그러면 인간의 문명이 고도로 발달되었따는 오늘날에는 그런 폐습이 사라지고 말았을까? 아니다. 잘 산다는 문명사회일수록 '현대장'이 성행되고 있는 실정이다. 요즘은 인권이 어떻고 생명의 존엄성이 어떻고 떠벌리기를 좋아하는 세상이라 구덩이 속에 갖다버리는 일은 차마 못하지만, 그대신 양로원이나 아파트에, 혹은 효도관광(?)길에 갖다버리는 것이다. 생활바리는 부장물을 채워서. 그러니 인류 문명이 전례없이 고도로 발달됐다는 오늘날에까지도 노인을 내다버리는 폐습은 공공연히 계승되고 있는 셈. 부끄러운 일이다. 죄 받을 일이다. 우리 모두가 늙지 않을 수 없는 존재인데.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다음과 같은 일로 부모에게 효도해야 한다. 부모를 잘 받들어 아쉬움이 없게 하고, 할 일이 있으면 먼저 부모에게 알리며, 부모가 하시는 일에 순종하여 거스르지 않아야 한다. 부모의 당부를 어기지 않으며, 부모가 경영하던 바른 사업을 계승하여 끊이지 않게 한다. 자식이 부모를 받들어 효도로써 섬기면 부모는 편안하여 아무 걱정이 없을 것이다.
부모는 다음고 같이 자식을 사랑해야 한다. 자식을 타일러 그릇된 일을 하지 못하게 하고 좋은 일을 가르쳐주며, 사랑이 자식의 골수에 사무치도록 해야 한다. 또 좋은 사람에게 결혼시키고 수시로 필요한 것을 대어주어야 한다. <육방예경>
어떤 사람이 왼쪽 어깨에 아버지를, 오른쪽 어깨에 어머니를 메고 히말라야를 백번 천번 돌아 살갗이 터지고 뼈가 부서진다 할지라도 부모의 은혜에는 미칠 수 없다. 어떤 사람이 부모를 위해 1백 자루의 칼을 자기 몸을 쑤시며 1천 겁을 지낸다 할지라도 부모의 은혜에는 미칠 수 없다. 또 부모를 위해 자기 몸을 불에 사르기를 억만 겁 할지라도 부모의 깊은 은혜에는 미칠 수 없다. <부모은중경>
* 자타카에선가 무슨 책에서 읽은 기억이 나는데, 그 사연은 대강 이렇다. 따뜻한 봄날, 한 아들이 늙은 어머니를 등에 업고 꽃구경을 간다. 꽃구경이란 말에 늙으신 어머니는 어린애처럼 좋아라 한다. 이제는 들길을 지나 산자락으로 접어들었다. 아들은 깊에 생각에 잠겨 묵묵히 걸어간다. 등에 업힌 어머니는 '무거울 텐데 쉬어서 가자'고 아들이 힘들 것을 못내 걱정한다. 아들은 아까부터 줄곧 말이 없다. 숲길이 짙어지자 노인은 선뜻 짚이는 것이 있었던지, 이때부터 손에 잡히는 대로 솔잎을 따서 띄엄띄엄 길에 뿌린다. 말이 없던 아들은 등에 업힌 어머니께 묻는다.
"어머님, 어째서 솔잎을 따서 뿌리세요?"
"네가 혼자서 돌아갈 때 혹시나 길을 잃어버릴까 봐 그런다."
이것이 어머니의 마음이다. 당신이 죽으러 가는 길인데도, 자식이 집으로 돌아갈 때 행여나 길을 잃을세라 걱정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부모를, 잘 산다고 하는 사람일수록 내다버리길르 좋아하는 현대인들. 이러고도 우리를 인간이라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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