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말씀'에 해당되는 글 289건

  1. 2012.07.18 [법정스님 말씀]나의 주인은 누구인가

나의 주인은 누구인가

 자기야말로 자신의 주인이고 의지할 곳

말장수가 말을 다루듯 자신을 잘 다루라


바라나시의 녹야원에서 최초의 설법을 마치고, 부처님은 우루벨라를 향해 교화의 길을 떠났다. 도중 길가에서 깊숙이 들어간 숲속 한 나무 아래 앉아 쉬고 있을 때였다. 한 떼의 젊은이들이 무엇인가를 찾아 허둥지둥 제정신을 잃고 헤매고 있었다. 

나무 아래 조용히 앉아 있는 부처님을 보자 그들은 물었다. 

"혹시 이리로 도망가는 여인을 보지 못하셨습니까?"

"그 여자를 어째서 찾으려고 하는가?"

사연인즉, 그들이 이 근처에 사는데, 저마다 자기 아내를 데리고 숲으로 놀이를 나왔었다. 그중 한 사람은 아직 미혼이라 기생을 동반했었다. 놀이에 정신이 팔려 있는 동안 기생은 그들의 값진 물건을 가지고 달아나버렸다. 그래서 그 여자를 찾느라고 온 숲을 뒤지고 있다는 것이다. 

"젊은이들, 달아난 여자를 찾는 일과 자기 자신을 찾는 일과 어떤 것이 더 보람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가?"

달아난 여자만을 찾아 정신없이 헤매던 그들은 이와 같은 질문을 받고서야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물론 자기 자신을 찾는 일이 더 보람있는 일이지요."

"그럼, 다들 거기 앉거라. 자기 자신을 찾는 일을 가르쳐주겠다."

부처님은 그들을 위해 차근차근, 괴로움과 괴로움의 원인과 괴로움의 극복과 그 극복에 이르는 길을 말씀하셨다. 

그들의 마음은 흰 천과 같이 아직 세상에 물들지 않았으므로, 이치에 맞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진리를 보는 눈이 열리었다. 

* 괴로움과 괴로움의 원인과 괴로움의 극복과 그 극복에 이르는 길을 사성제라고 한다. 인생 문제와 그 해결법에 대한 네 가지 진리라는 뜻. 

괴로움이란, 인생 그 자체가 괴로움이라는 것. 불교에서 본 인간의 현실상을 말한 것인데, 생 노 병 사가  괴로움이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헤어지는 괴로움, 미운 사람과 만나는 괴로움, 구해도 얻지 못하는 괴로움, 온갖 욕망이 불타오르는 괴로움. 이를 팔고라고 한다. 

괴로움의 원인은 인간의 욕망과 애착에 있다는 것. 모으고 쌓은 것은 모두 괴로움인데, 재산도 지나치게 많이 쌓으면 그것이 괴로움이 된다. 괴로움의 극복이란, 괴로움의 원인이 되는 번뇌가 완전히 사라진 상태. 즉 블교가 지향하는 이상은 온갖 모순과 갈등이 소멸된 열반에 있다. 

괴로움의 극복에 이르는 길은, 그 이상에 도달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행 방법인데, 여기에는 여덟 가지 바른 길이 있다. 불교의 기초교리에 생소한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좀 더 지루한 주석을 달았따. 


어떤 것이 괴로움의 극복에 이르는 길인가. 소멸에 이르는 방법 즉 여덟 가지 바른 길이다. 그것은 바로 견해, 바른 생각,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활, 바른 노력, 바른 기억, 바른 명상이다.

바른 견해란 네 가지 진리를 바로 보는 지혜이고, 바른 생각이란 번뇌 망상을 멀리하고 성냄과 원한이 없는 생각이다. 바른 말이란 거짓말, 악담, 이간질, 그럴듯이 꾸미는 말을 떠나서 하는 도리에 맞는 참된 말이다. 바른 행위란 살생, 도둑질, 음란한 짓을 하지 않고 올바른 생활규범을 지키는 일이다. 바른 생활이란, 불공정한 거래나 점술 따위의 수단을 떠나 정당한 방법으로 의식을 살아가는 것. 바른 노력이란, 아직 일어나지 않은 나쁜 생각을 일지 않게 하고, 이미 일어나는 나쁜 생각은 없애며, 아직 일어나지 않은 착한 생각을 일게 하고, 이미 일어난 착한 생각은 원만히 키워나가도록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다. 바른 기억이란, 생각을 한곳에 집중하여 몸과 마음과 진리를 바로 관찰하고 탐욕에서 일어나는 번뇌를 없애는 것. 그리고 바른 명상이란, 온갖 욕심과 산란한 생각을 가라앉혀 선정에 들어감을 말한다. 

* 부처님이 바라나시의 녹야원에서 다섯 사람의 수행자를 상대로 한 최초의 설법이다. 


자기야말로 자신의 주인이고

자기야말로 자신의 의지할 곳

그러니 말장수가 좋은 말을 다루듯이

자기 자신을 잘 다루라. 

<법구경, 380>


자기야말로 자신의 주인

어떤 주인이 따로 있을까

자기를 잘 다룰 때

얻기 힘든 주인을 얻은 것이다. 

<법구경, 160>


어디서나 자주적인 인간이 되라. 그러면 그 자리가 다 참되다. 

* 인간의 주인은 신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라고 하는 것이 불타 석가모니의 가르침이다. 어디까지나 인간 중심적인 입장. 신에 대한 관념이나 형이상학적인 견해는 불타의 기본적 입장에서 보면 개념적 존재에 불과하다. 자기 자신과 진리 이외에는 의지하지 말라는 것이 그의 유언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자기'란 온갖 모순과 갈등 속에서 부침하는 일상적인 자기가 아니라 본래적인 청정한 자아를 가리킴이다. 


깨달음을 얻어 깊이 생각하고

명상에 전념하는 지혜로운 이는

세속에서 떠나 고요를 즐긴다

신들도 그를 부러워한다. 

<법구경, 181>

* 기독교, 회교와 같이 세계 종교일지라도 사막지방에서 일어난 것은 '기도의 종교'이지만, 인도의 여러 종교처럼 몬순지방의 것은 '명상의 종교'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불교학자 헬만 벡크가 지적한 말이다. 기도의 경우는 기도의 대상으로서 인견적 창조신의 존재가 없어서는 안 된다. 그곳에는 으레 초자연적인 기적이 대두된다. 신앙의 부조리는 '기도의 종교'에 있어서 그 본질을 다룬다. 거기에서는 이성보다도 신앙의 우위를 존중한다. 그러나 불타는 자기 계발의 극한에 도달, 몸소 깨달음을 실현한다. 그것은 자신의 존엄성과 인간의 절대성에 대한 확신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불합리한 신앙을 요구하지 않는다. 이와 같은 불교의 기본적 성격은 인간으로서 만인에게 공통된 보편적 진리를 말하기에 이른다. 즉, 모든 중생은 다 불성을 지니고 있다고. 


전쟁터에서 싸워

백만인을 이기기보다

자기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

가장 뛰어난 승리자다. 


자기 자신을 이기는 일은

남을 이기는 일보다 뛰어난 것

그러니 자신을 억제하고

항상 절제하는 사람이 되라. 


이와 같은 사람의 승리는

그 누구도 꺾어 물리칠 수 없다

신도 간다르바도 악마도

또한 범천까지도

<법구경, 103~5>


먼저 자기 자신을 바로 갖추고

그런 다음에 남을 가르치라

이와 같이 하는 지혜로운 이는

괴로워할 일이 없으리라. 


남을 가르치듯 스스로 행한다면

그 자신을 잘 다룰 수 있고

남도 잘 다스리게 될 것이다

자신을 다루기란 참 어렵다.

<법구경, 158~9>


물 대는 사람은 물을 끌어들이고

활 만드는 사람은 화살을 곧게 한다

목수는 재목을 다듬고

유덕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다룬다. 

<법구경, 145>

* '불교를 배운다는 것은 곧 자기를 배움이다. 자기를 배운다는 것은 자기를 잊어버림이다. 자기를 잊어버림은 자기를 텅 비우는 일. 자기를 텅 비울 때 비로소 체험의 세계와 하나가 되어, 그 어떤 것과도 대립하지 않고 해탈된 자기를 알게 된다.' 해탈된 자기란 본래적인 자기, 전체인 자기를 가리킴이다. 그 이름은 잊었지만 어떤 선사의 어록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 


남의 허물은 보기 쉬워도 

자기 허물은 보기 어렵다

남의 허물은 겨처럼 까불어 흩어버리면서

자기 허물은 투전꾼이 나쁜 패를 감추듯 한다. 

<법구경, 252>


쇠에서 생긴 녹이

쇠에서 나서 쇠를 먹어 들어가듯

방종한 자는 자기 행위 때문에

스스로 지옥으로 걸어 간다. 

<법구경, 240>

* 자업자득 혹은 자작자수, 좋은 일이나 궂은 일이나 모두 내가 지어서 내가 받는다. 누가 들어서 그렇게 해주는 것 같지만, 사실은 내가 뿌린 씨의 열매를 내가 몸소 거두는 것. 그러므로 내 인생에 대한 책임은 오로지 내게 달린 것이다. 그렇게 할 수도 있고 그렇게 하지 않을 수도 있는 선택의 의지가 자기 자신에게 있음을 강조한 가르침. 


독경하지 않으면 경전이 때묻고

수리하지 않으면 집이 때묻으며

옷차림을 게을리하면 용모가 때묻고

방일하면 수행자가 때묻는다. 

<법구경, 241>


부정한 짓은 부녀자의 때

인색은 베푸는 이의 때

악덕은 참으로

이 세상과 저 세상의 때다.

<법구경, 241~2>

* 게으름은 최대의 악덕. 모든 가능성이 이 게이름 앞에서는 흩어지고 만다. 아무리 청정한 불성을 지녔다 할지라도 게을러 활용하지 않으면 무명에 가리어 매몰된다. 불타 최후의 유훈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하라'도 이 때문일 것이다. 동물 중에서 가장 용맹을 떨치는 사자는 외부로부터의 침해를 받아서가 아니라, 자기 몸 안에서 자생하는 벌레로 인해 죽는다고 한다. 마치 쇠에서 나는 녹이 쇠 자체를 침식하듯이. 


자신을 등불 삼고 자신에게 의지할 것이지 남에게 의지하지 말라. 법(진리)을 등불 삼고 법에 의지할 것이지 다른 것에 의지하지 말라. 

* 사람은 누구에겐가 의존하려는 버릇이 있다. 부처님이라 할지라도 그는 타인. 불교는 부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그의 가르침에 따라 자기 자신답게 사는 길이다. 그러므로 불교란, 부처님의 가르침일 뿐 아니라 나 자신이 부처가 되는 자기 실현의 길이다. 그렇기 땜누에 우리가 의지할 것은 부처님이 아니라 나 자신과 진리뿐이라는 말. 불교는 이와 같이 자기 탐구의 종교다. 자기 탐구의 과정에서 끝없는 이웃의 존재를 발견한 것이 대승불교. 초기 불교가 자기 자신을 강조한 것은 자기로부터 시작하라는 뜻에서이다. 자기로부터 시작하여 이웃과 세상에 도달하라는 것. 자기 자신에게만 갇혀 있다면 그것은 종교일 수 없다. 인간에게 있어 진실한 지혜란 이웃의 존재를 보는 지혜다. 자기라는 표현이 때로는(특히 대승경전에서는) 만인 공통의 '마음'으로 바뀐다. 




본래 산에 사는 사람이라 

산중 이야기를 즐겨 나눈다

5월에 솔바람 팔고 싶으나

그대들 값 모를까 그게 두렵네. 



Posted by 파노카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