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스님 말씀]사랑도 미움도 두지 말라
불교말씀 2012. 8. 8. 16:29 |사랑도 미움도 두지 말라
진리에 의지하고 사람에 의지하지 말라
뜻에 의지하고 말에 의지하지 말라
사랑하는 사람과 만나지 말라
미운 사람과도 만나지 말라
사랑하는 사람은 못 만나 괴롭고
미운 사람은 만나서 괴롭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사람을
애써 만들지 말라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것은 커다란 불행
사랑도 미움도 없는 사람은 얽매임이 없다.
사랑에서 근심이 생기고
사랑에서 두려움이 생긴다
사랑을 벗어난 이는 근심이 없는데
어찌 두려움이 있겠는가.
<법구경, 210~2>
* 사랑도 미움도 두지 않기가 어디 그리 쉬운 노릇인가. 잘은 모르지만 사랑은 그저 주는 데 의미가 있을 것이다. 굳이 이유라면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으니까. 그런 사랑에 어떤 보상이 있다면, 줄수록 맑아지고 풍성해지는 마음의 뜰을 지니게 되는 것. 애증이 섞인 사랑은 대중가요의 차지이지 진짜는 될 수 없다. 맹복적인 그 열기에 들떠 '죽어도 좋아'라고들 한다지만 죽어서 좋을 게 어디 있겠는가. 헌신적인 사랑을 할 수 없을 바에야 사랑도 미움도 두지 말라는 것. 단막증애 통연명백, 즉 사랑하고 미워하는 생각에서 벗어나면 앞뒤가 툭 트이어 모든 것이 분명해질 거라는 뜻. 3조 승찬 대사의 <심신명>에 나오는 말이다.
자유와 사랑은 함께 있다. 진정한 사랑은 반응이 아니다. 당신이 나를 사랑하니까 나도 당신을 사랑한다고 하면 그건 거래요 장사다. 진정한 사랑은 그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 우리가 무엇을 주고 있다는 사실조차 느끼지 못해야 한다. 이런 사랑 안에서만 우리는 자유를 알게 될 것이다.
사랑을 주제로 한 그 많은 대중가요,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그런 노랫가락에 우리들이 곧잘 말려드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 나름의 진실과 슬픔이 스며 있어서 그럴까? 아마 그럴 것 같다.
'나는 당신의 친구다'라고 말하면서도
할 수 있는 일을 맡아서 도와주지 않는 사람
그는 내 친구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모든 친구들에게 실천이 없이 말만 앞세우는 사람은
'말만 하고 실천하지 않는 사람'임을
어진이는 알고 있다.
항상 우정이 끊어질까 염려하여 아첨하면서도
벗의 결점만을 보는 사람은 친구가 아니다
아기가 엄마의 품에 안기듯이 그 사람을 의지하고
다른 사람 떄문에
그 사이가 멀어지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친구다.
<숫타니파타, 253~5>
남의 허물을 보지 말라
남이 했건 말았건 상관하지 말라
다만 내 자신이 저지른 허물과
게으름만을 보라.
<법구경, 50>
법(진리)에 의지하고 사람에게 의지하지 말라. 뜻에 의지하고 말에 의지하지 말라. 지혜에 의지하고 지식에 의지하지 말라. 요의에 의지하고 불료의에 의지하지 말라.
내가 이와 같이 말한 것은 육안밖에 갖지 못한 중생들을 위해서이지 지혜의 눈을 가진 이를 위해서가 아니다. 법이라 함은 법의 성품(실상)이고, 뜻이라 함은 영원해서 불변한 것이며, 지혜라 함은 중생들이 모두 불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고, 요의라 함은 대승의 법문에 통달한 것을 가리킨다.
<열반경 사의품>
부처님이 사밧티의 녹자모강당에 계실 때였다. 바라문 출신의 수학자 목갈라나가 부처님을 찾아왔다.
"이 강당의 층계는 1층을 오른 후에야 2,3,4층으로 오르게 됩니다. 코끼리를 다루는 사람도 순서를 따라 길들일 수 있습니다. 바라문들도 차례를 따라 베다를 배웁니다. 부처님의 교법과 계유율에는 어떤 순서가 이써 그를 성취하게 됩니까?"
"나이 어린 수행자가 오면 이렇게 가르치오. '너는 몸을 지켜 청정하게 하고 말과 뜻을 지켜 청정하게 하라.' 그가 시킨 대로 하면 그 다음을 가르치오. '너는 홀로 멀리 떠나 나무 밑이나 숲속과 같이 한적한 곳에 살면서 선정을 닦으라.' 그러나 장로 수행자나 학덕이 높은 바라문에게는 '구경에 가서는 모든 번뇌가 다하고 지혜를 얻는다'고 가르치오."
"그와 같이 가르치면 제자들은 모두 구경의 지혜를 얻어 열반을 얻게 됩니까?"
"얻는 사람도 있고 얻지 못하는 사람도 있소."
"열반은 있고 열반으로 가는 길도 있고 현재 그 길을 가리키는 분이 계시는데, 어쨰서 그들은 열반을 얻기도 하고 얻지 못하기도 합니까?"
"당신은 라자가하를 알고 거기로 가는 길도 알고 있을 것이오. 또 누가 그곳으로 가는 길을 묻는다면 당신은 아는 대로 가르쳐 줄 것이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가르쳐준 대로 따라가지 않고 길을 잘못 들거나 게으름을 피운다면 그곳에 도달할 수 없을 것이오. 라자가하가 있고 그곳으로 가는 길도 있고 또 당신은 그 길잡이였는데, 어째서 가는 사람도 있고 가지 못하는 사람도 있소? 그러니 그것은 저마다의 행동에 달린 것이오. 나는 다만 길을 가리킬 뿐이오, 그의 행동을 보고 '마침내 번뇌가 다하였다'고 인정할 따름이오."
<중아함 산수목건령경>
나는 의사와 같아서 병을 알고 약을 말하는 것이니, 먹고 안 먹는 것은 의사의 허물이 아니다. 나는 길잡이와 같아 좋은 길로 사람들을 인도하는 것이니, 듣고서 가지 않더라도 그것은 길잡이의 허물이 아니다.
<유교경>
선지식은 지혜로운 의사와 같다. 병과 그 약을 알고 증상에 따라 약을 주어 낫게 하기 때문이다. 선지식은 뱃사공과 같다. 생사 고해에서 중생을 건네주기 때문이다.
<열반경 고귀덕왕보살품>
* 나는 길이요 생명이요 빛이라고 하지 않고, 다만 길을 가리킬 뿐이라고 한 이 말에 불교의 진면목이 있다. 길과 생명과 빛은 저마다의 것이지 특정한 사람만의 것일 수 없다는 뜻이다. 일체 중생이 불성을 지니고 있고, 여래의 지혜 덕상을 갖추고 있다는 말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목마른 사람을 우물가까지는 인도할 수 있지만, 마시고 안 마시는 것은 그 사람 자신에게 달렸다. 한때 우리나라의 일부 못된 소장수들처럼 소가 안 먹으려는 물을 두들겨 패가면서 억지로 먹일 수는 없다는 말이다. 부처님이란 창조주도 절대자도 아닌 '깨달은 사람' '눈뜬 사람'을 가리킨다.
한 젊은이가 일찍 출가하여 항상 법화경을 읽었다.
어느 날 육조 스님을 찾아와 절하는데 공손치 못했다. 육조 스님이 꾸짖어 말했다.
"그렇게 머리 숙이기가 싫으면 뭣하러 절을 하느냐. 네 마음속에 뭣이 들어 있는 모양인데 무엇을 익혀 왔느냐?"
"법화경을 외우기 이미 삼천 독을 넘었습니다."
"네가 설사 만독을 하여 경 뜻을 통달했을지라도 그것을 자랑으로 여긴다면 도리어 허물이 된다는 걸 모르는구나. 네 이름이 무어지?"
육조 스님이 물었다.
"법달이라 합니다."
"네 이름이 법달이라고 하니 어떻게 그리 일찍 법을 통달했느냐? 허투로 외는 것은 소리일 뿐 마음을 밝혀야 보살이 된다. 부처는 말이 없는 것임을 믿으면 입에서 저절로 연꽃이 피리라."
법달이 뉘우쳐 사과를 했다. 경을 외우긴 했지만 뜻을 몰라 항상 의심이 있다고 하면서 경 뜻을 가르쳐 달라고 했다.
"법달이 법은 통달했어도 네 마음은 모르는구나. 경에는 본래 의심이 없는데 네 마음이 스스로 의심하는 것이다. 너는 경 뜻을 잘못 알고, 그것은 부처님의 지견을 말한 것이지 우리들 분수에는 맞지 않는 것이라고 하지 말라. 부처님 지견이란 곧 너 자신의 마음이요 따로 부처가 없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육조단경 기연품>
부처님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숲속을 거닐고 있을 때, 예전 사람들이 다니던 옛길을 찾아냈다고 하자. 그가 그 길을 따라 점점 앞으로 나아가는 동안 그 옛날 많은 사람들이 살았떤, 동산과 숲이 있고 아름다운 둑으로 싸인 연못도 갖추어진 예전의 왕도를 찾아냈다고 하자.
그는 돌아와 왕이나 대신을 찾아가 그가 발견한 옛 왕도에 대해서 본 대로 알리고, 그 도시를 다시 일으키자고 권유할 것이다. 왕과 대신들은 그의 권유를 받아들여 그 도시를 다시 일으킨다. 그 도시는 뒷날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크게 번창할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나는 과거의 정각자들이 찾아간 옛 길을 발견한 것이다. 그 옛길이란 성스러운 여덟 갈래의 길이다. 나는 그 길을 따라가면서 늙음과 죽음을 깨달았고, 늙음과 죽음의 원인을 알았으며, 늙음과 죽음의 소멸을 알았고, 늙음과 죽음의 소멸에 이르는 길을 알았다. 나는 그 길을 출가 수행자들과 마을에 사는 남녀 신자들에게 두루 알렸다. 이렇게 해서 청정한 수행이 번성하고 널리 행해졌고,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더욱 널리 퍼지게 된 것이다."
<상응부경전 제2권>
"라훌라야
늘 가까이서 함께 살고 있기 때문에
너는 어진이를 가볍게 여기는 것은 아니냐
모든 사람을 위해 횃불을 비춰주는 사람을
너는 존경하고 있느냐?
사랑스럽고 즐거움이 되는
오욕의 대상을 버리고
믿음으로 집을 떠나
괴로움을 없애는 사람이 되라.
선한 친구와 사귀어라
인가를 떠나 깊숙하고 고요한 곳에서 거처하여라
그리고 음식의 분량을 아는 사람이 되라.
옷과 얻은 음식과 환자를 위한 물건과 거처
이런 것에 대해서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된다
다시는 세속에 돌아가지 말아라.
계율을 지키고 다섯 감관을 지켜
네 육신을 살펴라
참으로 세속을 지겹게 생각하라.
애욕 때문에 아름답게 보이는
겉모양을 떠나서 생각하라
육신은 부정한 것이라고 마음에 새겨두고
마음을 하나로 집중시켜라.
마음에 자취를 두지 말라
마음에 도사린 오만을 버려라
오만을 없앤 너는
마음 편안한 나날을 보내리라.:
<숫타니파타, 335~342>
* 라훌라는 부처님이 출가하기 전 태자로 있을 때 태자비 야쇼 다라와의 사이에 낳은 아들이다. 그는 어려서(12세) 출가, 최초의 사미승(견습승)이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철없이 구는 바람에 말썽을 부리기도 했다. '음식의 분량을 아는 사람이 되라'고 타이른 것은, 그때의 승단에서는 하루 한끼밖에 먹지 않았기 때문에 배가 고파 운 적이 더러 있었다. '다시는 세속에 돌아가지 말아라' '세속을 지겹게 생각하라'고 한 말은 이따금 집생각이 날 어린 마음에 불퇴전의 의지를 심어준 것이다. '오만을 버리라'고 한 말을 통해서, 자기 아버지가 교단의 지도적인 자리에 있다고 해서 행여나 오만한 생각을 가질세라 경책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거룩한 스승은 라훌라 존자에게 이와 같은 말씀으로 되풀이해 가르치셨다'라고 이 경전은 끝을 맺고 있다. 철없는 어린 아들을 차근차근 타이르고 있는 아버지의 자상한 정 같은 걸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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