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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8.10 [법정스님 말씀]번뇌와 속박에서 떠나라

번뇌와 속박에서 떠나라

지혜로운 이는 독립과 자유를 찾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출가하여 수행자가 되는 것이 어찌 작은 일이랴. 편하고 한가함을 구해서가 아니며, 따뜻이 입고 배불리 먹으려고 한 것도 아니며, 명예나 재산을 구해서도 아니다. 오로지 생사의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는 것이며, 번뇌의 속박을 끊으려는 것이고, 부처님의 지혜를 이으려는 것이며, 끝없는 중생(이웃)을 건지려고 해서이다.

<휴정, 선가귀감>


부모형제와 이별하고 출가한 사문은 욕망을 쉬고 애욕을 끊어, 자기 마음의 근원과 법의 깊은 이치를 알아서 열반의 경지에 이르러야 한다. 안으로 얻을 것이 없고 밖으로는 구할 것이 없어, 마음은 진리에도 매이지 않고 업도 짓지 않는다.

<사십이장경>


머리와 수염을 깎고 사문이 되어 내 가르침에 따르는 사람들은 세속의 온갖 재산을 버리고 남에게 빌어서 얻은 것으로써 만족하라. 하루 한 끼만 먹고 한 나무 아래에서 하루 이상 머무르지 말라. 사람의 마음을 덮어 어리석게 하는 것은 애착과 탐욕이기 때문이다.

<사십이장경>

* 불교의 출가 수행승을 비구(bhikkhu)라고 하는데, 그것은 걸식하는 거지란 뜻. 다른 거지와 다른 점이 있다면, 밖으로는 밥을 빌어 육신을 유지하고 안으로는 법(진리)을 빌어 중생을 이롭게 한다는 점이다. 걸식은 고대 인도 수행자들의 전통적인 습관으로 사유재산을 갖지 않는다는 데 의미가 있다. 


모든 생물에 대해서 폭력을 쓰지 말고

모든 생물에 그 어느 것이나 괴롭히지 말며

또 자녀를 갖고자 하지도 말라

하물며 친구이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서로 사귄 사람에게는 

사랑과 그리움이 생긴다

사랑과 그리움에는 괴로움이 따르는 법

연정에서 근심 걱정이 생기는 줄 알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숫타니파타, 35~6>


숲속에서 묶여 있지 않는 사슴이

먹이를 찾아 여기저기 다니듯이

지혜로운 이는 독립과 자유를 찾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동반자들 속에 끼면

쉬거나 가거나 섰거나

또는 여행하는 데에도 항상 간섭을 받게 된다

남들이 원치 않는 독립과 자유를 찾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숫타니파타, 39~40>

* 외로움을 극보한 사람만이 홀로 설 수 있다. 당당하게 홀로 설 수 있다. 인도의 구루인 크리슈나무르티는 이런 말을 하고 있다. '홀로 있으려면 엄청난 지성을 지녀야 한다. 그리고 하느님과 진리를 알기 위해서 우리는 혼자여야만 한다. 사람의 삶 속에 풍부함이 있다면, 시작과 끝이 없는 실재의 움직임, 그 풍요로움을 지닌다면, 그때 친구 같은 것은 부차적인 문제다.'


그대가 

현명하고 일에 협조하고

예절 바르고 총명한 동반자를 얻는다면 

어떠한 난관도 극복하리니

기쁜 마음으로 생각을 가다듬고

그와 함께 가라. 


그러나 만일 그대가

현명하고 일에 협조하고

예절 바르고 총명한 동반자를 얻지 못했다면

마치 왕이

정복했던 나라를 버리고 가듯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숫타니파타, 45~6>


세상의 유희나 오락

혹은 쾌락에 젖지 말고

관심도 가지지 말라

꾸밈 없이 진실을 말하면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숫타니파타, 59>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흙탕물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숫타니파타, 71>


사람들로부터 떠나 고독한 생활을 닦고 익히라. 번뇌의 속박으로부터도 이탈하라. 만약 그곳에서 즐거움을 얻을 수 없다면, 자기의 감관을 지키고 바른 결심을 가지면서 승가(대중) 속에 살아라. 

<장로게>


부처님이 기원정사에 계실 때 '상가라바'라는 한 바라문(바라문교의 수행승)이 찾아와 부처님께 물었다. 

"대덕이여, 우리들 바라문은 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공희(공양)를 올리면서 자기를 위해 혹은 타인을 위해 재앙을 없애고 복을 비는 길을 닦습니다. 그런데 세존(부처님)의 제자들이 하는 것을 보면, 오로지 자기를 다루고 자기를 세우고 자기의 고뇌를 없애는 데에만 전념하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자기 한 사람만의 행복을 위해 수도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부처님은 대답하셨다. 

"바라문이여, 그대에게 묻겠으니 생각나는 대로 대답해 보시오. 그대는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시오. 이 세상에 여래 정각자가 나타나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즉, '이것이 길이다. 이것이 실천이다. 나는 이 길을 가고 이를 실천하여 번뇌를 없애고 해탈(자유)을 얻었다. 그대듣도 와서 함께 이 길을 가고 이를 실천하여 번뇌를 없애고 해탈을 얻으라'고. 이와 같은 그의 말을 듣고 사람들도 또한 그 길을 가서 해탈을 얻은 사람이 수백 수천 수만에 이른다면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그와 같이 되었을지라도 이 길은 자기 한 사람만의 행복을 위한 길일까요?"

"대덕이여, 그렇게 되면 출가의 행위도 또한 많은 사람의 행복을 위한 길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겠군요."

<중아함 상가라경>


아무리 경전을 많이 외울지라도

이를 실천하지 않는 방종한 사람은

남의 소만 세고 있는 목자일 뿐

참된 수행자의 대열에 들 수 없다. 


경전을 조금밖에 외울 수 없더라도

진리대로 실천하고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바른 지혜와 해탈을 얻고

이 세상과 저승에 매이지 않는 이는

진실한 수행자의 대열에 들 수 있다. 

<법구경, 19~20>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여인에 대해서 어떻게 대하면 좋겠습니까?"

"보지 말라."

"이미 보았다면 어떻게 합니까?"

"말하지 말라."

"그러나 말을 해버렸다면 어떻게 합니까?"

"그런 때는 조심하라."

<남전 대열반경>

*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기 조금 전에 시자인 아난다가 부처님께 물어서 답한 것. 이 경을 읽으면서, 왜 이런 질문이 갑자기 튀어 나왔는지 그 상황 설명은 전혀 없다. 아난다가 언제부터 묻고 싶었던 것을 생각이 난 김에 물었는지, 아니면 결집(성전편집)할 때 5장 18절에 끼어 넣은 것인지 알 수 없다. 같은 내용을 훨씬 후기에 이루어진 <사십이장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출가 수행자는 여인을 마주보지 말고, 함께 이야기하지도 말라. 만약 함께 이야기할 때는 똑바른 마음으로 '나는 출가 사문이다. 흐린 세상에 태어났으니 연꽃이 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것과 같아야 한다'라고 생각하라. 그리고 나이 많은 여인은 어머니로 생각하고, 손위가 되는 이는 누님으로, 나이 적은 이는 누이동생으로, 어린이는 딸과 같이 생각하여 제도하려는 마음을 낸다면, 불순한 생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사십이장경>


출가 수행자는 여인에게 이끌려 법을 설해서는 안 되며 대면하기를 좋아해도 안 된다. 남의 집에 가더라도 젊은 여인과 함께 이야하지 말며, 혼자서 남의 집에 들어가지 말라. 일이 있어 부득이 혼자 들어갈 때에는 일념으로 여래를 생각하라. 여인에게 법을 설할 때는 이를 드러내어 웃지 말고 옷깃을 헤쳐 보이지 말며, 설사 법을 위해서일지라도 그들과 친하지 말아야 한다. 

<법화경 안락행품>


수도인은 마른 풀을 가진 것과 같아서 불을 가까이하지 말아야 한다. 수도인이 욕망의 대상을 보게 되면 마땅히 멀리해야 한다.

어떤 사문이 음락한 생각이 그치지 않음을 걱정한 끝에 자신의 생식기를 끊으려고 했다. 나는(부처님) 그에게 다음과 같이 타이른 적이 있다. 


'생식기를 끊는 것은 생각을 끊는 것만 못하다. 음란한 생각을 쉬지 않고서 생식기를 끊은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사십이장경>


내 제자들이 내게서 멀리 떠나 있더라도 내가 가르친 계유율을 항상 생각하면 반드시 깨달음을 성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 곁에서 항상 나를 보고 있더라도 내 계율(생활규범)에 따르지 않는다면 끝내 깨달음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사십이장경>

* 여러 경전을 통해 출가 수행승들에게 이성과의 접촉에 대해서 누누이 말한 것은, 수행승은 '청정'을 으뜸으로 삼기 때문. 애욕으로 인해 걱정 근심이 생기고, 걱정 근심으로 인해 두려움이 생긴다. 애욕에서 떠나버리면 걱정도 두려움도 생길 까닭이 없다는 것. 모든 집착에서 벗어나는 것이 진정한 출가. 애욕은 가장 끈질긴 집착이라는 것이다. 


밀린다왕이 존자 나가세나에게 물었다. 

"스님, 출가한 수행자에게도 육신은 소중합니까?"

"아닙니다. 출가 수행자는 육신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왜 스님들은 육신을 아끼고 집착합니까?"

"왕은 싸움터에 나가 화살에 맞은 적이 있지요? 그때 상처에 연고를 바르고 기름약을 칠하고 붕대를 감았습니까?"

"그렇게 했습니다."

"그렇다면, 그 같이 치료한 것은 그 상처가 소중해서였습니까?"

"아니지요. 상처가 소중해서가 아니라 상처의 살이 부풀어 곪았으므로 치료했을 뿐입니다."

"그와 같습니다. 출가 수행자에게 육신이 소중하거나 거기 집착해서가 아니라, 청정한 수행을 더욱 잘 하기 위해 육신을 유지할 뿐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일찍이 '육신은 상처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출가 수행자들은 육신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육신을 상처처럼 보호하는 것입니다."

<밀린다 왕문경>

* 스님들이 식당에서 공양을 받을 때 외우는 오관게가 있다.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고

내 덕행으로는 받기 부끄럽네

마음에 온갖 욕심 버리고

육신을 지탱하는 약으로 알아

도업을 이루고자 이 고양을 받습니다.'

보다 정확히 표현한다면,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라 이 육신에게 먹이는 것이 된다.


어떤 사람이 물었다.

"수도를 하는 데에 도시나 농촌 혹은 저자로 가지 않고 굳이 깊은 산으로 들어가는 이유는 어디에 있습니까?"

스승은 대답했다.

"큰 집의 재목은 심산 유곡에서 나온 것으로, 처음부터 세상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인가에서 멀리 떠나 있기 때문에 톱이나 도끼의 해를 입지 않고 제대로 큰 재목이 되어 비로소 기둥과 대들보로 쓰이는 것. 정신을 깊은 골에 숨기어 멀리 티끌 세상을 피하고 성명을 산중에서 기른다. 세상일을 떠나 눈앞에 거리낄 게 없으니 마음은 저절로 안정하게 된다. 이렇게 해야만 도의 나무에 꽃이 피고 선의 숲에 열매가 맺힌다. 

<동산법문>

* 기주 동산의 오조 홍인 선사의 법문. 


눈이 있는 사람(부처님)은 어째서 출가를 했는지

그는 무엇을 생각한 끝에 출가를 선택했는지

그의 출가에 대해서 나는 이야기하리라.


'집에서 사는 생활은

비좁고 번거로우며 먼지가 쌓인다

그러나 출가는 널찍한 들판이며

번거로움이 없다'고 생각해 출가한 것이다. 


출가한 다음에는

몸으로 짓는 나쁜 행위를 멈추었다

말로써 짓는 악행도 버리고

아주 깨끗한 생활을 하였다.

<숫타니파타, 405~7>


모든 욕망에는 근심이 있고

출가는 안온하다고 알아

힘써 정진합니다

내 마음은 이것을 즐기고 있습니다.

<숫타니파타, 424>

* 고대 인도의 전통적인 바라문 사회에서는 인생을 네 시기로 나눈다. 첫째는 학생기로서, 취학의 나이가 되면 스승을 찾아가 그 곁에서 시중들며 <베다>와 그빡의 경전을 배운다. 이 기간은 순결한 수행기간으로 성의 순결을 지키고, 음주, 살생, 가무, 오락 등이 금지된다. 두번째는 가주기인데, 학생기가 끝나면 집에 돌아와 결혼하고 가정생활과 사회생활을 갖는다. 이렇게 살다가 사내아이가 태어나 한 사람의 구실을 할 만큼 성장하면, 아버지는 가산을 아들에게 넘겨주고 숲속에 들어가 검소한 종교생활을 한다. 이때 아내는 아들에게 맡겨도 되고 혹은 함께 숲으로 데리고 갈 수도 있다. 이것이 세번째의 임주기. 네번째는 유행기인데, 모든 집착을 떨쳐버리고 집이나 소유물도 없이 홀가분하게, 머리와 손톱과 수염을 깎고 바리때와 지팡이와 물병만을 가지고, 철저한 무소유가 된 채 걸식으로 편력의 생활을 한다. 불교의 출가는 이 경우에 해당된다. 

인도에서는 옛날부터 이와 같이 종교적 의미를 가진 걸식의 습관이 있었으므로 그런 출가생활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걸식하는 수행자는 일반인의 존경을 받았다. 이 네 가지 시기의 구분은 바라문을 위주로 마련된 것이지만 그 밖의 계급, 특히 크샤트리야(무사 귀족계급)도 이에 준해서 살아가고 있었다. 육체적인 욕망이나 재산의 소유욕에 비해 종교적인 이상을 추구하는 의욕이 강했다는 사실을 모르고는, 인도인의 그와 같은 생활 태도를 제대로 이해하기란 곤란하다. 


"출가하여 여러 가지 욕망을 없앤 수행자는

어떻게 해야 이 세상을

바르게 편력할 수 있겠습니까?"


"길조의 점, 천지이변의 점,

해몽, 관상 보는 일을 완전히 버리고

길흉의 판단을 버린 수행자는

세상에서 바르게 편력할 것이다.


좋아하는 것이나

좋아하지 않는 것이나 다 버리고

아무것에도 집착하거나 매이지 않고

온갖 속박에서 벗어난다면

그는 세상에서 바르게 편력할 것이다.


말과 생각과 행동으로 거역하지 않고

바르게 법을 알아

열반의 경지를 구한다면

그는 세상에서 바르게 편력할 것이다.


수행자가 자기 분수에 알맞는 것을 알고

세상에서 아무것도 해치지 않고

사실 그대로 이치를 안다면

그는 세상에서 바르게 편력할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어떤 잠재적인 집념도 없이

악한 뿌리가 뿌리째 뽑히고

바라는 것도 구하는 것도 없다면

그는 바르게 세상을 편력할 것이다. 


과거와 미래에 대해서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않고

지극히 깨끗한 지혜가 있어

모든 변화하는 현상의 영역에서 벗어나 있으면

그는 바르게 세상을 편력할 것이다.

<숫타니파타, 359~373>

* 수행자의 삶은 곧 편력이다. 끝없는 형성의 길이기 때문. 초기 교단에서는 한 나무 아래에서 두 밤을 지내지 말라고도 했었따. 수행자가 한 곳에 안주하면, 고여 있는 물처럼 썩기 쉽다. 흐르는 물은 영원히 산다. 구름과 물은 한 곳에 머무르지 않는다. 구름과 물처럼 산다고 해서 수행승을 운수납자라고도 한다. 


수행자는 제때가 아닌 때에는 돌아나니지 말아라

정해진 시각에 탁발을 하러 마을에 가라

때가 아닌데 다니는 것은 집착에 얽매인 것이다

그러므로 눈뜬 사람들은 

제때가 아닌 때에는 나다니지 않는다.


모든 빛, 소리, 냄새, 맛, 촉감은

사람을 도취시킨다

이런 것에 대한 욕망은 삼가고

정해진 시각에만 

아침밥을 얻으러 마을에 들어가라.


만일 가르침을 듣고자 하는 사람이나

다른 수행자들과 함께 이야기할 일이 있거든

그 사람에게 훌륭한 진리를 보여주어라

이간하는 말이나

남을 비방하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숫타니파타, 386~9>


나는 그대에게 성자의 길을 말하리라

음식을 얻을 때에는 

면도날의 비유를 생각하라

혈르 입 천장에 붙이고

스스로 배를 주리라. 


마음이 침체되어서는 안 된다

또한 쓸데없이 많은 것을 생각해서도 안 된다

비린내가 없이, 걸림이 없이

청정한 행을 궁극의 의지처로 삼아라.


홀로 앉는 일과

도인에게 봉사하는 일을 배우라

성인의 길은 홀로 있는 것이다

홀로 있어야만 즐거울 수 있다.

<숫타니파타, 716~8>

* 면도날의 비유란, 면도날에 묻은 꿀을 핥을 때에는 혀를 베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것인데, 시주의 물건을 사용할 때 번뇌의 더럽힘이 없도록 주의하라는 뜻. 




소나무 밑에 돌을 베고 누워 잠이 들었다

새소리에 놀라 깨니 해가 기울다

책력도 없는 산중 해가 바뀌어도 세월을 모른다.

- 태상은자 <답인>

Posted by 파노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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