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라니는 범어 '다라니(dharani)'의 한자표기로서 크게 세 가지 뜻을 가지고 잇습니다. 

첫째, 불교의 모든 가르침이 다라니 속에 함축되어 있기 때문에 이것만 외워도 진리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둘째, 불교경전의 내용을 보거나 듣기만 해도 모두 다 기억하기 때문에 후대엔 일종의 '기억술'로 통하게 되었습니다. 셋째, 일심으로 다라니를 외우면 모든 악과 재양이 침범하지 못하기 때문에 악을 물리치는 주문으로 인식되었습니다. 

이상에서 열거된 바와 같이 다라니에는 불가사의하고도 무한한 힘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는데 어째서일까요?

다라니만 일심으로 외우면 정신이 통일(집중, 삼매)되어 오묘한 진리를 터득할 수도 있고, 또 정신이 집중되면 무엇이든지 잘 기억하게 되고 사리도 잘 분별하게 되고 머리도 명석해진다는 것이지요. 

또 다라니(진언)는 크든 작든 소리를 내어 염불처럼 외우는데 이 역시 정신이 집중(삼매)되어 몸과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게 되고, 따라서 외부의 악과 내면의 사악한 마음이 끼어들 틈이 없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내면(마음)이 탄탄하게 되므로 외부의 세력이 침범을 못하는 것입니다. 설명이 좀 장황하고 중복된 감이 있습니다만, 제목 자체가 까다로운 주제입니다. 

다라니를 다른 말로는 '진언'이라고도 합니다. 진언이란 허튼 말이 아닌 '진실한 말' '참다운 말'이라는 뜻으로, 실담문자(범어의 자음과 모음)로 짧은 주문(비밀스러운 문구)입니다. 

즉 화두처럼 무슨 뜻을 갖고 있는지 알기 어렵기 때문에 일부분만 해석할 수 있을 뿐 완전한 해석이 불가능합니다. 또 해석을 하면 신비성이 결여되기 때문에 해석을 하지 않는 것이 통례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다라니나 진언은 더욱더 신비스러운 주술, 주문처럼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진언과 다라니는 같으면서도 그 형식에 있어서 약간 차이가 있습니다. 대체로 진언은 짧고, 다라니는 깁니다. 

예컨대 <천수경> 첫 대목의 '정구업진언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에서 '정구업진언(구업을 깨끗이 하는 진언)'은 진언의 이름이고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는 진언의 구문입니다. 이 진언을 외우면 악한 말로 남을 괴롭힌 죄가 다 없어진다는 것이지요. 또 우리가 많이 듣는 '옴 마니 반메 훔'도 진언입니다. 이처럼 진언은 대체로 짧으면 한 자, 길어야 두세 줄 정도에 불과합니다. 

반면 '다리니'는 진언보다 훨씬 깁니다. 예컨대 <천수경>의 '신묘장구 대다라니(신묘한 힘을 가진 큰 다라니)'나 <능엄경>의 신비스러운 주문인 '능엄신주'처럼 상당히 긴 것을 가리킵니다. 또 탑 모양과 같은 그림 속에 경전의 전문이 쓰여져 있는 것을 '탑다라니'라고 하여 불상을 조성하거나 탑을 조성할 때에 그 속에 넣기도 합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진언이나 다라니는 무슨 뜻을 갖고 있는지 완전히 해독하기 어렵고 또 해독이 불가능한 것이 많습니다. 이는 고대 인도인들이 쓰던 문자(살담문자)로서 마치 암호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불교 이전부터 힌두교를 비롯한 인도의 각 종교에서는 주문을 많이 숭상했습니다. 아마 고대 인도의 문화적 전통으로써 압축된 또는 신비한 힘을 가졌다고 생각되는 주문 형식을 불교에서도 받아들여 '다라니(진언, 주문)'라고 하는 형태 속에 경전의 내용을 압축시켜 외우게 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윤창화)



Posted by 파노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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