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스님 말씀]법으로써 다스리고 비법으로 다스리지 말라
불교말씀 2012. 8. 22. 10:58 |법으로써 다스리고
비법으로 다시르지 말라
왕이 브라지 않으면 그 관료들
또한 바르지 않기 때문에..
"다섯 가지 공포를 없애는 것이 나라를 다스리는 기초라고 했는데 그 다섯 가지 공포란 어떤 것입니까?"
"첫째는, 왕의 인품이 순박하고 진중해서 과세 방법이 공평함으로써 국왕에 의한 수탈의 공포를 없애야 한다.
둘째는, 군인들이 충직하고 현명해서 탐욕을 부리지 않음으로써 국왕의 측근들이 횡포를 부리는 공포를 없애야 한다.
셋째는, 관료들이 그 직분을 지키고, 은혜와 너그러움을 가지고 백성을 대함으로써 부패 관료들로부터 피해를 입는 공포를 없애야 한다.
넷째는, 백성들이 모두 도리를 지키고 겸손하며 나라를 사람으로써 도둑들이 날뛰는 공포를 없애야 한다.
다섯째는, 이웃나라와의 관계를 원만히 하고 교류를 잘함으로써 침략의 공포를 없애야 한다.
이 다섯 가지 공포를 없애지 않으면 백성들은 항상 불안한 상태에 있게 될 것이다."
<화엄경 입법계품>
* 2천5백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나라를 위태롭게 하는 불안 요인은 너무나 흡사하다. 과세의 공평, 군인들의 자기 본분 지키기, 청렴한 공직자, 투철한 시민정신, 원만한 외교관계 등이 국정의 지표가 되어야 한다는 것. 지당한 말씀이다.
부처님이 마가다의 서울 왕사성 밖에 있는 영취산에 머물고 있을 때였다. 마가다의 왕 아자타삿투는 갠지스 강 북쪽에 있는 밧지국이 날로 부강해지는 것에 위협을 느꼈다. 그는 선제공격을 가하여 그 나라를 정복하려고 한 신하를 부처님께 보내 자문을 구했다. 부처님은 왕의 신하에게 말했따.
"내가 일찍이 밧지국에 머무르면서 본 일인데, 그 나라 사람들은 모두 부지런하고 진실합디다. 나는 그들을 위해 나라를 다스리는 데에 필요한 일곱 가지 법을 말한 일이 있소. 만약 지금도 그것을 실행하고 있따면 그 나라는 더욱 번영할 것이고 결코 쇠약해지지는 않을 것이오."
부처님은 그 사신이 보는 앞에서 사자 아난다를 불러 물었다.
"아난다여, 밧지국 사람들이 자주 모임을 가지고 상호간의 의사를 자유롭게 나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느냐?"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온 나라 안이 서로 화목하여 갈수록 흥왕할 것이다. 그 나라는 언제나 평화로워 누구의 침략도 받지 않을 것이다."
부처님은 이와 같이 차례차례로 물었다.
"그들은 서로가 화합하여 국민의 의사를 존중하여 일을 처리하느냐?
그들은 또 새로운 제도를 마련하거나 그전 제도를 버리지 않고, 예부터 내려온 법과 양풍미속을 지키고 있느냐?
그 나라 사람들은 나이 많은 연장자를 공경하느냐?
그들은 부녀자와 소녀들에게 강압적으로 말을 듣게 하는 일은 없느냐?
그들은 예전부터 내려오는 조상에 대한 제사를 게을리하지는 않느냐?
그리고 그들은 수행자를 존경하고 이웃나라의 수행자들이 마음놓고 내왕하면서 그 나라에 머물기도 하느냐?"
이런 일들을 그 나라에서는 잘 지키고 있다고 대답하자, 부처님은 왕이 보낸 사신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와 같은 일들을 지키고 있는 한, 밧지국은 앞으로도 번영할 것이고 결코 쇠퇴하지는 않을 것이오."
* 부처님은 그 나라의 국정자문위원도 무슨 주체세력의 대의원도 아니었지만, 덕이 높은 수행자의 말에 귀를 기울일 만큼, 그 시절 마가다의 왕은 겸허했던 모양이다. 부처님은 이렇게 해서 마가다왕의 전쟁에 대한 무모한 야망을 꺾어놓는다. 뿐만 아니라 낱낱이 제시한 물음을 통해, 이 나라는 과연 이 같은 일을 지키며 살아가는 건전한 사회인가를 넌지시 묻고 있다. 이것을 경전에서는 '일곱 가지 쇠망하지 않는 가르침'이라고 한다. 불교의 사회적인 실천윤리의 기초는 더 말할 것도 없이 자비에 있다. 같은 내용의 이야기가 첫머리에도 수록되어 있다.
코살라국의 비두다바왕은 4개의 군단을 이끌고 석가족의 수도 카필라바스투를 향해 진격했다. 부처님은 그들이 지나갈 길가의 한 시들어버린 나무 아래 앉아 있었다.
왕은 부처님을 보자 물었다.
"망고나무처럼 가지와 잎이 무성한 큰 나무도 많은데 어째서 하필이면 다 시들어버린 나무 아래 앉아 계십니까?"
부처님은 대답했다.
"친족의 그늘은 그 어떤 그늘보다도 시원하니라."
왕은 생각했다.
'부처님은 석가족 출신이다. 오늘은 그만 되돌아가자.'
그는 자기 나라로 돌아갔다.
두번째 진격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져, 부처님은 이렇게 말했다.
"친족의 그늘은 시원하니라. 석가족 사람들은 부처라고 하는 큰 나무의 자식들, 모두가 가지와 잎이니라. 죽어가는 것을 앉아서 보고 있을 수가 없노라. 그래서 나는 이 시들어버린 나무 아래 앉았노라."
세번째 진격이 있을 때, 신통 제일인 제자 목갈라나는 부처님께 제언했다.
"철망으로 카필라성을 위를 덮으면 어떨까요?"
"목갈라나여, 철망을 사용한다고 해서 어찌 과거세의 인연을 덮을 수 있겠느냐. 그대는 추라자의 할 일을 하라. 석가족 사람들은 과거세의 인연으로 오늘 그 갚음을 받아 멸망할 것이다."
비두다바왕은 카필라를 향해 거침없이 진격해 들어갔다.
* 일설에 의하면, 비두다바왕의 어머니는 석가족의 마하나만과 그 계집종 사이에 태어난 여자로, 속임수에 의해 파세나디왕의 왕비가 된다. 비두다바가 어렸을 때 외가인 석가족의 카필라에 갔다가, 자기 어머니의 출신에 대해 흉보는 소리를 듣고 원한을 품어, 뒷날 석가족을 멸망시켰다고 한다.
숙세(전생)에 진 업연은 피할 수 없다는 말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요즘 한창 때려부수며 무자비한 학살을 자생하고 있는 이스라엘과 PLO간의 레바논 전쟁이며, 이란과 이라크 사이의 원한의 뿌리를 생각케 한다. 우리들의 남북 분단은 또 어떤 업연에서일까?
정의로운 왕은 내란이나 적국의 침략에 대한 응전에 대해서, 3단계에 걸쳐 수단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된다. 전쟁 처음 단계에서 정의로운 왕은 적국에 대해서 다음 수단을 생각한다.
첫째, 적국의 군사력이 자국의 것과 대등한지 우세한지를 탐지한다. 자국과 대등하다면 전쟁으로 서로 피해만 입을 것이니 이익이 없다. 만약 적국이 우세하다면 적은 살아남고 이쪽은 멸망한다. 이렇게 생각하고 적국 왕의 친구나 어진 사람을 통해서 적과 화해하고 전투를 중지해야 한다.
둘째, 적국 통치자의 역량이 자기와 대등하거나 자기보다 우세한 경우에는, 정의로운 왕은 맞서 싸우지 말고 저쪽에서 요구하는 것을 주고 전투를 중지해야 한다.
셋째, 적국이 이쪽보다 뛰어난 인력과 화력을 가지고 있을 때는, 술책을 써서 이쪽이 만만치 않은 난적임을 과시, 적국에 두려움을 갖게 하여 전투를 종식시켜야 한다.
* 현대전의 다양하고 가공할 입장에서 보면 지극히 소박하고 단순한 고대사회의 전쟁 억제 방법이 유치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러나 갖은 수단과 방법으로 어떻게 하든지 전쟁을 억제하려는 그 정신만은 오늘이라고 해서 다를 수 있겠는가. '정의로운 왕'이란 평화와 자유를 사랑하는 유덕한 최고 통치자를 가리킨다.
국가의 위기나 멸망의 원인은 함부로 시류에 영합하려는 데에 있다. 시류의 평판이 좋다고 해서 여기에 귀기울이게 되면 결코 참된 현자(유능한 정치가)를 얻을 수 없다. 참된 현자를 얻으려면 그 사람됨을 바로 보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세상의 평판이 좋다고 해서 반드시 그 사람이 현자는 아니다. 또한 세상의 평판이 좋지 않다고 해서 그 사람이 반드시 현자가 아니라고 할 수도 없다. 진짜이면서도 비난받을 수 있고, 가짜이면서도 칭찬을 듣기도 하므로, 잘 살피어 착오가 없도록 해야한다. 현자를 등용치 않는 것은 나라의 손실이고, 어리석은 자를 채용하는 것은 나라의 통탄할 일이다.
관리들은 고위직이나 하위직을 막론하고 모두 법에 따라 업무를 바르게 수행하고 범범하기 쉬운 자들을 일깨워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법에 의한 보호, 법에 의한 처리, 법에 의해 안락을 주는 것, 법에 의해 언어와 행동을 삼가하는 것, 이것이 관리가 준수해야 할 규칙이기 때문이다.
* 아쇼카왕(재임기간 B.C. 268~232)은 중인도 마가다 지방에 군림했던 마우랴왕조의 제3대 왕. 그는 불교적인 이념으로 나라를 다스렸다. 흐트러지기 쉬운 공무원들 자신의 준법정신을 일깨우고 있다. 공직자는 어느 나라 어느 시댈르 막론하고 권력을 남용하면서 부패하기 쉽기 때문이다.
총명한 군주는 백성인 농민을 존중해야 한다. 그들은 나라의 근본이다. 예전부터 농민의 융성과 쇠망은 나라가 제대로 다스려지느냐 어지러워지느냐와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농민이 가난하게 되면 논밭이 제대로 경작될 수 없다. 논밭이 경작되지 못하면 국민은 모두 근본을 망각하고 지엽 말단을 따르게 된다. 지엽 말단을 따르다 보면 눈앞의 이해타산에만 급급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바른 길을 잃는다. 이것이야말로 분쟁과 혼란의 실마리라고 할 수 있다.
왕은 바르게 나라를 다스리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왕이 바르지 않을 때 그 관료들도 바르지 않기 때문이다. <자타카>
*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우리 속담은 영원한 진리. 상탁하부정.
왕이여, 법(정의)으로써 다스리고 비법으로 다스리지 말라. 이로써 다스리고 비리로 다스리지 말라. 정법으로써 백성을 다스리라. <자타카>
왕이 법에 따르면 온 나라가 안락을 누리지만, 왕이 비법을 행할 때는 온 나라가 재앙을 입는다. <자타카>
* 지나온 인류역사를 되돌아볼 때,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선량한 시민들은 정치권력의 비법과 비리의 횡포 속에서 얼마나 시달려 왔던가. 법이 곧 정의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한낱 기술로 타락, 정권은 자기들 편리할 대로 뜯어고치기가 일쑤였다. 이렇게 되면 무법천지. 걸핏하면 국가안보를 내세워 시민들의 입에 재갈을 물려가면서 침묵을 강요한다. 그러나 그런 정권의 말로가 어떠했던가. 위정자가 몸소 법질서를 지키면 나라 안에 자유와 평화가 깃들 수 있지만, 통치계층이 비법과 비리를 자행할 때 그 희생은 전체 국민이 입는다는 것은, 세계 시민들이 도처에서 뼈저리게 체험한 산 교훈이다.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주지 않기 때문에 빈곤 상태가 점점 더해간다. 빈곤 상태가 심화되어감에 따라 사람들은 서로 남이 주지 않는 것을 도둑 마음으로 훔치게 된다.
왕이 물었다.
"네가 참으로 도둑질을 했느냐?"
"그렇습니다. 저는 가난해서 며칠을 굶주렸습니다. 살기 위해 하는 수 없이 남의 것을 훔쳤습니다."
<장아함경 제16권>
* 그때의 나라 법으로는 도둑이 붙잡히면 도성 안에 조리를 돌린 다음 참수형에 처하였다. 그러나 상의상관 관계를 말하던 초기 불교의 견해에 의하면, 도둑질하는 것은 도둑만이 나빠서가 아니다. 남의 것을 훔치지 않을 수 없도록 생활 상태를 악화시킨 위정자가 오히려 나쁘다는 것. 요즘 말로 하자면 분배가 고르지 않아 자기 몫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굶주리다 못해 남의 것에 손을 댄 것이다. 도둑질을 정당한 행위라고 두둔하자는 게 아니라, 빈곤의 책임은 개인에게만 있지 않고 사회 전체에 있다는 뜻에서 하는 얘기이다.
국왕이여, 몸소 백성들에게 이로움을 가르쳐 보아라. 왕의 부패한 관료들 때문에 나라의 재산을 탕진하고 나라의 위신을 떨어뜨리지 않게 하라. 일을 급히 서두르지 말라. 그리고 급히 서두르게 하지도 말라. 어리석은 자는 일마다 급히 서둘러 이내 후회하게 되느니라. <자타카>
* 이 구절을 대하니 개인이나 정부가 저질러놓은 우리 시대의 그 많은 시행착오가 연상된다. 부패관료들의 횡포와 '최저경비에 최단시일'이라는 조급하고 성급한 졸속주의로 인해, 낱낱의 예를 들출 수도 없이 우리는 얼마나 많은 인명 피해며 재산상의 손실을 입었던가. 하나의 열매가 맺혀서 익으려면 적어도 사계절의 질서가 있어야 한다. 급히 하는 일치고 제대로 된 일을 보았는가?
그 시기가 임박해서야 비로소 기울이는 노력은 사실은 마땅히 할 일을 하지 않은 거나 다름이 없다. 미리부터 기울인 노력이어야 할 일을 다한 것이다. <밀린다 왕문경>
무슨 일이나 먼저 하지 않으면 안될 우선순위를 따라 미리 준비하라. 막상 그떄에 닥쳐서야 허둥대며 당황할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자타카>
* 해마다 우리는 가뭄과 풍수해로 인해 수많은 인명의 희생과 재산의 피해를 입고 있다. 그때마다 관계당국에서는 이구동성으로 '항구적인 대책'을 세운다고 야단인데, 이 항구적인 대책은 재해와 함께 해마다 항구적으로 되풀이되고 있다. 유비무환이라 했던가.
만약 어떤 사람이 반역을 시도했면 그를 죽이지 말고, 박해하지 말고, 다른 나라로 내보내라. 자기 자신(국왕) 보기를 적을 보듯이 엄격히 하라.
어떤 사람이 불손하게 왕명을 거역하고 백성들을 해치거나 그 행동이 국법을 어겼다면, 먼저 좋은 말로써 설득하고 가르치라. 반역을 버리고 순종한다면, 왕은 반드시 자비로써 용서하고 재산을 몰수하거나 추방하지 말라. 이와 같이 해도 뉘우침이 없다면 그때 가서 나라 밖으로 내보내라. <화엄경 입법계품>
* 형벌은 그 근본정신이 범법자를 교정 감화시켜 선량한 사람으로 복귀시키는 데에 그 목적이 있지, 범법에 대한 복수나 보복에 있지 않다. 응보형이 아니고 교육형의 입장. 그렇기 때문에 사형제도나 고문 같은 처형을 가하는 비인간적인 형벌을 불교에서는 강력히 배격한다. 삼권이 분립되지 않아 생사 여탈권을 한손에 쥐고 있던 전제군주 시절에 '자기 자신 보기를 적을 보듯이 엄격히 하라'는 말은, 남을 벌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반성하고 스스로 비판할 것을 지적하고 있다. 어째서 반역을 시도하게 되었을까를 곰곰히 생각해 보라는 것. 일찍이 선정을 베풀었다면, 정직한 정치를 행했다면 그런 일이 일어났을 것인가.그리고 최고형이라 할지라도 국외 추방으로 그치라는 것. 통치자의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좀 했다고 해서, 무기징역을 살린다거나 아니면 15년 징역에 15년 자격정지 같은 비법을 행하지 말라는 것이다. 관용의 종교인 불교는 형벌에 대해서도 관경주의 입장에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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