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물은 흘러서 바다로

즐거움을 구하는 자는 슬픔과 욕심과

걱정을 버려라. 번뇌의 화살을 뽑으라


부처님이 어떤 사문(출가 수행자)에게 물었다. 

"사람의 목숨이 얼마 동안에 있느냐?"

"며칠 사이에 있습니다."

"너도 아직 도를 모른다."

다른 사문에게 물었다. 

"사람의 목숨이 얼마 동안에 있느냐?"

"밥 먹는 사이에 있습니다."

"너도 아직 도를 모른다."

또 다른 사문에게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호흡 사이에 있씁니다."

"그렇다, 너는 도를 아는구나."

<사십이장경>


허공 중에서도 바다 가운데서도

혹은 손속의 동굴에 들어갈지라도

악업의 갚음에서 벗어날

그런 세계는 어디에도 없다. 

<법구경, 127>


초대받지 않았는데도 그는 이 세상에 왔다가 허락도 없이 이 세상을 떠나갔다. 그는 온 것과 같이 사라져갔다. 여기 어떤 한탄이 있을 것인가. <자타카>


지금까지 부자가 된 사람 많고 명성을 얻은 사람도 많다. 그러나 부와 명성과 함께 그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가. 그 누구도 그 자취를 모른다. <입보리행론>


태어난 것은 죽음을 피할 길이 없다

늙으면 죽음이 온다

실로 생이 있는 자의 운명은 

이런 것이다. 


익은 과일은 빨리 떨어질 위험이 있다

그와 같이 태어난 자는

죽지 않으면 안된다

그들에게는 항상 죽음의 두려움이 있다. 


젊은이도 장년도

어리석은 이도 지혜로운 이도

모두 죽음에는 굴복해버린다

모든 사람은 반드시 죽는다. 


그들은 죽음에 붙잡혀

저 세상으로 가지만

아비도 그 자식을 구하지 못하고

친척도 그 친척을 구하지 못한다. 


보라 

친척들이 애타는 마음으로 지켜보지만

사람은 하나씩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처럼 사라져간다. 

<숫타니파타, 575~80>


인간은 애욕 속에서 홀로 태어났다가 홀로 죽어간다. 자신이 지은 선악의 행위에 의해 즐거움과 괴로움의 세계에 이른다. 자신이 지은 행위의 과보는 그 누구도 대신해 받을 수 없다. 착한 일을 한 사람은 좋은 곳에, 악한 짓을 저지른 사람은 나쁜 곳에 태어난다. 

태어난 곳은 달라도 과보는 당초부터 기다리고 있으므로, 그는 혼자서 과보의 늪으로 간다. 멀리 떨어진 딴 세상으로 따로따로 가버리기 때문에 이제는 서로 만날 기약이 없다. 한번 헤어지면 그 가는 길이 서로 다르므로 다시 만나기가 어렵다. <무량수경>


그때는 온 사람의 길을 모르고

또 간 사람의 길도 모른다

그대는 생과 사 양쪽을 보지 않고

부질없이 슬피 운다. 


미망에 붙들려

자기를 해치고 있는 사람이

울고불고해서 무슨 이익이라도 생긴다면

현자도 그렇게 할 것이다. 


근심을 버리지 않는 사람은

점점 더 고뇌를 받게 된다

죽은 사람 때문에 운다는 것은

근심에 사로잡힌 것이다. 

<숫타니파타, 582~6>


부처님이 사밧티의 기원정사에 계실 때, 삼대 독자를 잃어버린 한 과부는 비탄에 빠져 먹지도 자지도 않고 울기만 했다. 하루는 부처님을 찾아와 자신의 슬픔을 하소연하였따. 

"세존이시여, 저는 유복자를 잃고 살아갈 용기마저 잃었습니다. 저에게 이 슬픔에서 벗어날 길을 가르쳐주십시오."

부처님은 이렇게 말했다. 

"가엾은 아주머니, 한 가지 방법이 있으니 그대로 하시오. 지금 곧 가서 아직 사람이 죽어 나간 일이 없는 일곱 집을 찾아내어 쌀 한 움큼씩을 얻어 오시오. 그러면 내가 그 슬픔에서 벗어나는 길을 가르쳐 주리다."

유복자를 잃은 그 여인은 바삐 마을로 쌀을 얻으러 나갔다. 며칠이 지난 뒤 여인은 한 움큼의 쌀도 얻지 못하고 맥이 빠져 돌아왔다. 

부처님은 물었따. 

"사람이 죽지 않은 집이 있던가요?"

그제야 여인은 부처님이 가르쳐준 의도를 알아차리고 슬픔에서 벗어났다. 

<아바다나>


그러므로 존경하는 사람의 말씀을 듣고

죽은 사람을 보았을 때에는

'그는 이미 내 힘이 미치지 못하게 되었구나'라고 깨달아

슬퍼하거나 탄식하지 말아라. 


이를테면, 집에 불이 난 것을 물로 꺼버리듯

지혜롭고 총명한 사람들은

걱정이 생겼을 때는 이내 지워버린다

마치 바람이 솜털을 날려버리듯이.

<숫타니파타, 590~1>


밀린다왕이 나가세나에게 물었다. 

"사람이 죽을 때 윤회의 주체가 저 세상에 옮아감이 없이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옮아감이 없이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다."

"어째서 그럴까요. 비유를 들어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어떤 사람이 등불에서 등불로 불을 붙인다고 합시다. 이런 경우 한 등불이 딴 등불로 옮아간다고 할 수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윤회의 주체도 한 몸에서 딴 몸으로 옮아감이 없이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다시 다른 비유를 들어 설명해 주십시오."

"왕은 어릴 때 스승으로부터 배운 시를 기억하십니까?"

"그렇습니다. 기억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시는 스승으로부터 왕에게로 옮겨진 것일까요?"

"아니지요. 그렇진 않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몸은 옮김이 없이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잘 알았습니다. 스님."

<밀린다 왕문경>


자신의 즐거움을 구하는 사람은

슬픔과 욕심과 걱정을 버리라

자기 번뇌의 화살을 뽑으라. 


번뇌의 화살을 뽑아버리고

거리낌없이 마음의 평안을 얻는다면

모든 걱정을 초우우러하여 근심없는 자

평안에 들어간 자가 될 것이다.

<숫타니파타, 592~3>


자기 집 앞에서 얼굴이 아름답고 화사하게 차려 입은 여인을 보고 주인은 반기며 물었다. 

"당신은 누구신지요?"

"공덕천이어요."

"무슨 일을 하시나요?"

"가는 데마다 그 집에 복을 준답니다."

이 말을 들은 주인은 그 여인을 맞아들여 향을 사르고 꽃을 뿌려 공양하였다. 

밖을 보니 또 한 여인이 문앞에 서 있었다. 그녀는 추한 얼굴에 남루한 누더기를 걸치고 있었다.  주인은 기분이 언짢아 퉁명스럽게 물었다. 

"당신은 누구요?"

"흑암천이라 해요"

"무슨 일로 왔소?"

"가는 데마다 그 집에 재앙을 뿌리지요."

이 말을 들은 주인은 썩 물러가라고 고함을 쳤다. 그녀가 비웃으면 말했다. 

"조금 전에 당신이 맞아들인 이는 우리 언니인데, 나는 항상 언니와 같이 살아야 할 팔자랍니다. 나를 쫓아내면 우리 언니도 따라올겁니다."

주인은 공덕천 여인에게 그 사실을 물으니 그렇다고 하면서 이렇게 대답했다. 

"나를 좋아하려면 우리 동생도 함께 좋아해야 합니다. 우리는 한시도 떨어져서는 못 사니까요."


주인은 두 여인을 다 내쫓아버렸다. 팔을 끼고 나란히 사라져가는 자매의 뒷모습을 보고 그는 마음이 후련했다. 

태어나면 늙어야 하고 병이 들면 죽게 되는 법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이 두가지에 다 같이 집착하지만, 보살은 함께 버리고 애착하지 않는다. 

<열반경 성행품>



올 때는 흰구름 더불어 왔고

갈 때는 밝은 달 따라서 갔네

오고 가는 한 주인은

마침내 어느 곳에 있는고. 

- 휴정 <죽은 스님을 슬퍼함>

Posted by 파노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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