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구경 제8장 - 천보다도 백보다도
불교말씀/법구경 2014. 2. 1. 16:56 |100. 쓸모 없는 저 천 마디의 말보다도
그대 영혼에 기쁨을 주는
단 한 마디의 말이 보다 낫거니.*
* 우리 주변은 지금 너무나 많은 말로 굽이치고 있다.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한 말들이 홍수처럼 넘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말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말에 굶주리고 있다. 진실한 마음에서 나오는 단 한 마디의 말에 굶주리고 있다.
101. 형용사로 가득 찬
저 천 개의 시구보다도
그대 영혼의 잠을 깨우는
단 한 줄의 시가 보다 낫거니.*
* 시란 짧을수록 응축력이 있다. 그런데 요즈음의 시들을 보라. 쓸데없이 말이 왜 그리 길고 긴가.
102. 온갖 찬사로 가득 찬
저 천 개의 성구보다도
그대 영혼의 줄을 울리는
단 한 마디의 글귀가 보다 낫거니.
103. 전장에 나가
백만의 적과 싸워 이기는 그것보다
자기 자신과 싸워 이기는 것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승리거니.*
* 자기 자신과 싸워 이긴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그러나 자기 자신과 싸워 이긴 이들은 죽음의 차원마저 초월해 버린다. 역사는 결코 이들을 시간의 차원으로 끌어내려 평할 수 없다.
104. 자기 자신에 대한 승리야말로
승리 가운데 가장 위대한 승리거니
끈임없이 자기 자신을 정복하고
자기 자신을
지혜롭게 다스려 가는 사람을.
105. 신들도 악마조차도
그리고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이제 그를 정복할 수는 없다.*
* 가장 위대한 정복자는 누구인가. 징기스칸, 알렉산더, 나폴레옹 등은 확실히 위대한 정복자였다. 그러나 그런 부류의 정복자들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위대한 정복자는 아니다. 그들은 결코 위대한 정복자가 아니라 지배욕에 불타던 미치광이들이었다. 그러나 역사는 이런 미치광이들을 위대한 영웅으로 치켜세우고 있으니 이 얼마나 웃기는 일인가. 그렇다면 정말로 위대한 정복자는 누구인가. ... 자기 자신을 정복한 사람이다. 정복하기 힘든 자기 자신을 정복하여 인간의 영혼에 불멸의 빛을 되살아나게 해준 분들이다.
106. 저 브라만 산을 향하여
한 달에 천 번씩 백 년 동안을
내내 공양물을 올리는 그것과
자기 자신을 정복한 사람에게
단 한 번의 존경을 표하는 그것과
어느 것이 더 값어치가 있겠는가.
저 백 년 동안의 번제공양보다도
이 단 한 번의 존경이
훨씬 값 있는 것이니.*
* 형식은 중요하다. 그러나 형식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용이다. '형식'이라는 그릇에 담기는 '내용물'이다.
107. 깊은 산 속에 들어가 백 년 동안을
불의 신 아그니에게
제사를 드리는 그것과
자기 자신을 정복한 이에게
단 한 번이라도 존경을 표하는 그것과
어느 쪽이 보다 값어치가 있겠는가.
저 백 년 동안의 제사보다도
이 단 한 번의 존경이
훨씬 값 있는 것이니.
* 재래식 부엌의 불 지피는 곳을 '아궁이'라고 한다. 우리말의 이 아궁이는 산스크리트어의 '아그니(Agni)'에서 온 말이다. 불의 신 '아그니'가 불을 지피는 부엌 '아궁이'로 변한 것이다.
108. 제아무리 정성을 다하여
신에게 제사를 지낸다 해도
그만은 못하리.
그 영혼이 잠깨어 홀로 가는
저 수행자에게 드리는 그 존경의 마음,
그만은 못하리, 그만은 못하리.*
* 물질이 물질의 차원에만 머물게 될 때 그 물질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물질 속에 그 정성이 깃들인다면, 그대 마음이 깃든다면, 그 물질은 '정신적인 것의 가시적인 표현'으로 변질된다. 이런 물질(정신화된 물질)에는 그 한계가 없다.
109. 나이 많은 이를 존경하고 받들게 되면
다음의 네 가지가 증가한다.
수명장수, 건강
그리고 삶의 힘찬 에너지와 그 기쁨.
110. 백 년 동안을
무의미하게 사는 것보다도
단 하루만이라도 여기
명상과 축복 속에 사는 것이
보다 낫지 않겠는가.*
* 그러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맹목적으로 수명장수를 바라고 있는가. "쇠똥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고 외쳐대며 좀더 오래 살려고 발버둥치고 있는가. 맹목적인 생의 이 발악현상은 고령층일수록 그 농도가 짙다. 젊은이들은 차라리 깨끗이 죽을 수 있다. 저 승조법사처럼 담담하게 칼날에 목을 맡길 수 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그럴수록 죽음 앞에서 비겁해지게 된다.
용기 있는 이들은 다 떠나가고
비겁한 자들만이 살아남은 이 거리
살아남기 위하여 갖가지 비겁한 짓으로
오늘도 또 하루가 시작되는 이 거리
111. 백 년 동안을
무지하게 사는 것보다는
단 하루만이라도 여기
명상과 지혜의 빛 속에서 사는 것이
보다 낫지 않겠는가.
112. 백 년 동안을
나약하고 게으르게 사는 것보다는
단 하루만이라도 여기
굳은 의지와 진지한 노력 속에 사는 것이
보다 낫지 않겠는가.
113. 이 모든 사물의
그 생성과 소멸을 알지 못한 채
백 년을 무의미하게 사는 것보다는
단 하루만이라도 여기
이 모든 사물의 생성과 소멸을
알고 사는 것이 보다 낫지 않겠는가.
114. 니르바나, 저 불멸을 알지 못한 채
백 년을 사는 것보다는
단 하루만이라도 여기
니르바나, 저 불멸을 깨닫고 사는 것이
보다 낫지 않겠는가.
115. 저 영원의 길을 알지 못한 채
취하여 백 년을 사는 것보다는
단 하루만이라도 여기
불멸의 길을 알고 사는 것이
보다 낫지 않겠는가. *
* 문제는 얼마만큼 오래 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이다. 이런 입장에서 본다면 '수명장수 부귀다남'이란 중국식의 명언은 무지스러움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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