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뢰와 같은 침묵

문자나 말 한마디 없는 이것이야말로

절대 평등의 경지에 드는 길


유마힐은 보살(구도자)들에게 말했다. 

"보살은 차별을 떠난 절대 평등의 경지에 어떻게 해야 들어갑니까? 생각한 대로 말씀해 주십시오."

법자재보살이 말했다.

"생과 멸은 두 개의 대립된 개념입니다. 그러나 모든 존재는 본래 생하는 것이 아니므로 멸하는 일도 없습니다. 이 생함이 없는 것을 깨닫는 것이 절대 평등의 경지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덕수보살이 말했다.

"너와 내 것은 서로 대립하고 있습니다. 내가 있기 때문에 내 것이 있습니다. 만약 내가 없다면 내 것도 있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절대 평등의 경지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사자보살이 말했다. 

"죄악과 복덕은 서로 대립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죄악의 본성이 복덕과 다르지 않음을 깨달아 알고 금강석과 같은 지혜로써 이러한 사실을 분명히 깨달으며, 거기에 구속을 받거나 해방되는 일이 없다면, 이것이 절대 평등의 경지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선의보살이 말했다. 

"생사와 열반은 서로 대립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생사의 본성을 이해하는 생사는 이미 없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결박되는 일도 없으며 그로부터 벗어날 필요도 없고 생과 멸도 없습니다. 이와 같이 아는 것을 절대 평등의 경지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뇌천보살이 말했다. 

"지혜와 무명은 서로 대립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명의 본성은 곧 지혜입니다. 그렇다고 이 지혜에 집착해서도 안됩니다. 모든 무명을 떠나 대립되는 거싱 없으면 이것이 절대 평등의 경지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보살들이 저마다 말을 하고 나자, 유마힐은 문수보살에게 물었다. 

문수보살은 이렇게 답했다.

"내 생각으로는, 모든 것에 대해서 말도 없고 말할 것도 없고 가리킬 것도 식별할 것도 없으며, 일체의 질문과 대답을 떠난 것, 이것이 절대 평등의 경지에 드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이번에는 문수보살이 유마힐에게 물었다.

"우리들은 각기 생각한 바를 말했습니다. 이제는 당신의 차례입니다. 어떻게 해야 보살은 절대 평등의 경지에 들어갑니까?"

이때 유마힐은 입을 다문 채 아무 말이 없었다. 이것을 본 문수보살이 감탄하여 말했다. 

"훌륭합니다! 참으로 훌륭합니다! 문자나 말 한마디 없는 이것이야말로 참으로 절대 평등의 경지에 드는 것입니다."

<유마경>

* 문수는 그 경지를 말할 것도 없다고 말로써 설명했는데, 유마힐은 입다문 채 그대로 드러내 보인 것이다. 그 침묵은 절대 평등의 경지를 나타내는 방법으로서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경지에 들어간 모습 자체다. 언어나 동작에 의한 일체의 매개물을 제거, 생명 자체가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한 침묵이야말로 말이 따를 수 없는 우뢰와 같은 침묵이다. 그러한 침묵이야말로 말이 따를 수 없는 우뢰와 같은 침묵이다. 살아 있는 사상은 살아 있는 율동을 갖는다. 백 마디의 설명을 덮어버리는 강렬한 유율동을 갖는다. 

대품반야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부처님의 10대제자 중 한 사람인 수부티는 부처님이 말한 반야(지혜)의 공한 이치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었으므로 '해공제일'이라는 칭송을 들었다. 이 수부티가 어느 날 나무 아래 단정히 앉아 좌선, 자신도 천지도 텅텅 비운 일체공의 선정 삼매에 든다. 이때 천신들이 꽃비를 내리면서 수부티를 찬탄한다. 수부티는 의아해서 묻는다.

"이처럼 공중에서 꽃비를 내리면서 저를 찬탄하는 분은 누구신지요?

"우리는 인드라입니다."

"어째서 이처럼 찬찬하시나요?"

"우리는 존자께서 반야바라밀다(지혜의 완성)를 잘 설하기 때문에 찬탄하는 것입니다."

"나는 다만 조용히 좌선하고 있을 뿐, 반야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말한 적이 없는데요..."

"존자께서는 설한 바가 없고 우리는 들은 바가 없습니다. 무설무문 즉, 설한 바 없이 설하고 들은 바 없이 듣는 이것이야말로 진짜 반야가 아니겠습니까?"




훨훨 날아가는 외기러기인가

찬 그림자 가을 하늘에 어리는데

날 저문 산비 지팡이를 재촉하고

먼 강바람에 삿갓이 기운다.

- 휴정 <원선자를 보내고>


Posted by 파노카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