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숫타니파타 네번째, 시의 장 - 13. 문답, 그 둘재
불교말씀/숫타니파타 2015. 3. 8. 14:04 |이런 식으로 편견을 고집하면서
"이것만이 진리"라고 말하는 사람들,
그들은 모두 남들에게 비난을 받는다.
또 일부의 추종자들은 그들과 동조하여
그들을 높이 추켜올릴 것이다.
비록 칭찬을 받는다 해도 그것은 잠시뿐
길이 편안함을 얻을 수 없다.
논쟁의 결과는 결국 칭찬 아니면 비난,
이 두 가지일 뿐이다.
이런 이치를 잘 알아서
그대들은 논쟁의 물결이 모두 자버린
니르바나 저 언덕을 향해 나아가거라.
어떤 경우에도 말싸움을 해서는 결코 안 된다.
저속한 친구들이 품고 있는 이들 세속적인 견해에
지혜로운 이는 결코 가까이 가지 않는다.
그들은 보고 들은 것에 대해서
'이것이다'라고 단정하지 않기 때문에
어떤 장애도 장벽도 있을 수 없다.
계율만이 최고라고 여기고 있는 사람들은
"절제에 의해서만이 순결해질 수 있다."
이렇게 주장하고 있다.
그들은 스스로 '진리에 이른 자'라 자처하면서
유전하는 이 생존 속으로 다시 끌려드러오고 있다.
혹 어쩌다가 계율을 어긴다면
그는 두려움이 떨면서 불안해 할 것이다.
"계율을 지킴으로써만이 순수한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부르짖으며
그는 몹시 비탄해 할 것이다.
동료들로부터 뒤쳐진 상인이 그 동료들을
찾아 헤매듯,
집을 나온 나그네가 객지를 떠돌면서
자나깨나 고향집을 그리워하듯.
그러므로 계율만을 너무 고집하지 말라.
나쁜 행위와 좋은 행위를 모두 버려라.
순수를 바라지도 말고 순수치 않음을 바라지도 말고
그 어떤 것에도 붙잡히지 말고 가거라.
평화만을, 평화만을 너무 강조하지도 말라.
극심한 고행을 통해서
또는 보고 듣고 사색한 것을 통해서
순수를 소리 높이 찬양하고 있지만
그러나 욕망에서 완전히 떠나지 않으면
변천하는 이 생존권을 벗어날 수 없느니.
구함이 있는 곳에는 욕망이 있고
계획이 있는 곳에는 두려움이 있다.
그러나 삶도 죽음도 존재하지 않는 자
그는 무엇을 두려워하겠는가.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어떤 사람이 '최고의 가르침'이라 칭하는 것을
또 어떤 사람은 '가장 낮은 가르침'이라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중에서 누구의 말이 과연 진실인가.
그들은 하나같이
'나야말로 정말 진리에 이른 자'라 칭하고 있다.
그들은 자기의 가르침은 '완전하다'고 하며
다른 사람의 가르침은 '비열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들은 이처럼 서로 다른 의견을 품고 논쟁을 하며
제각기 자기의 가설을 진리라고 주장한다.
남들이 비난하기 때문에 낮은 가르침이라면
이 모든 가르침 가운데 뛰어난 가르침은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대개 사람들은 자기의 가르침만을 굳게 주장하면서
남의 가르침을 저질스럽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의 길을 칭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가르침만을 높이 받들고 있다.
그렇다면 이 세상의 모든 가르침들이
그대로 진실일 것이다.
그들은 모두들 자신의 길만이
가장 순수하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수행자는 다른 사람에게 이끌려 가지 않는다.
또 이 모든 것에 대하여 단정을 내려 고집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모든 논쟁을 초월해 있으며
그리고 다른 여러 가르침을 특별히 우러러 보지도 않는다.
'나는 알았다. 나는 이렇게 봤다'고 확신하는
이 견해로 하여 순수해질 수 있다고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나 그가 그렇게 봤다 하더라도
그것이 그대 자신에게 무슨 보탬이 된단 말인가.
보는 사람은 명칭과 형태를 볼 것이다.
보고 나서는 그것들을 '영원하고 즐겁다'고 할 것이다.
그가 본 대로 그렇게 즐거워하도록 내버려 두라.
그러나 진리에 이른 사람은 결코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것(보는 것)에 의해서 순수해질 수 있다."
이런 식으로는 결코 말하지 않았으니.
'나는 알았다. 나는 봤다'는 이것을
굳게 고집하고 있는 사람은
스스로가 만든 편견에 붙잡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를 거기에서 끌어낸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자신의 입장만을 타당하며
여기에만이 순수에 이르는 길이 있다고
끝끝내 고집하는 사람,
이런 사람을 일러
'한 쪽밖에 볼 줄 모르는 자(편견의 소유자)'라 한다.
진정한 수행자는 시간의 속박을 받지 않으며
또한 생존의 제약을 받지도 않는다.
그는 어떤 견해에도 끌려가지 않으며
지식에도 결코 오염되지 않는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저 갖가지 견해의 가시밭을
손쉽게 뚫고 지나가 버린다.
사람들은 너나없이 지식의 쟁취에 혈안이 되고 있지만
그러나 그는 이런 것에도 전혀 관심이 없다.
현자는 이 세상의 모든 속박을 버렸으므로
논쟁이 일어나더라도 그 어느 편에도 가담하지 않는다.
불안한 무리들 속에 있으면서도
그는 오히려 편안하고 넉넉하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집착의 늪 속에서 초조해 하고 있지만.
그는 과거의 오염을 이미 버렸고
또 새로운 오염을 만들지도 않는다.
욕망에 이끌려 방황하지도 않으며
편견에 사로잡혀 떠들어대지도 않는다.
그는 모든 이 편견에서 벗어나 있으므로
더 이상 이 세상에 오염되지도 않으며
자신을 지나치게 꾸짖지도 않는다.
보고 배우고 사색한 어떤 것에 대해서도
그는 저대로 적대감을 갖지 않는다.
그는 선입관념의 짐을 벗어 버렸다.
그는 더 이상 시간에 예속되지 않으며
죽음 앞에 무릎 꿇지도 않는다.
그는 더 이상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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