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큰 장: 제2, '작은 장'에 비하여 이 장의 길이는 그 배가 넘는다(362편의 시). 그래서 이 장을 '큰 장'이라 했으며 제2장을 '작은 장'이라 한 것이다. 

* 출가(pabbajja): 보다 완벽한 구도자가 되기 위하여 집을 나오는 것. 따라서 원어 파바쟈에는 '앞으로 나아가다', '증발해 버리다'는 의미가 포함돼 있다. 고타마(부처님)가 수행자의 길을 가기 위하여 출가한 것은 당시의 일반적인 종교적 풍습을 따랐던 것을 뜻한다. 전설에 의하면 고타마는 출가한 후 7일 뒤에 당시 최대의 강국인 마가다국의 수도 왕사성(라즈기르)에 왔다고 한다. 그러나 왕사성에 왔다는 것은 지나친 과장이다. 그의 고향 카빌라 성에서 왕사성까지의 거리가 직경 300마일 이상이며 실제의 길을 따라오자면 400마일 이상이 되기 때문이다. 이 거릴르 출가수행자가 탁발하면서 7일 만에 걸어왔따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또 다른 기록에 따르면 부처님은 왕사성에 도착하여 탁발을 끝내고 사람들에게 이 도시에서 출가수행자가 사는 곳이 어디냐고 물었다고 한다. 사람들에게서 출가수행자의 거처는 판다바 산의 동쪽이라는 말을 듣고 부처님은 그곳으로 갔던 것이다. 이때 빔비사라 왕은 그(부처님)를 찾아와 그의 출생을 묻고 출가를 단념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이를 거절하고 두 명의 요기(요가수행지가)를 찾아갔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그가 출가수행자가 되어 얼마 지나지 않아 당시 최대의 강국인 마가다국의 수도 왕사성에 왔다는 그 사실이다. 마가다국은 당시 새로운 최신 기술의 개발과 경제성장이 급진전하던 나라였다. 말하자면 그는 당시 새로운 문화의 중심지에 온 것이다. 

왕사성은 현재 인도의 비하르 주 파트나에서 약 600마일거리의 동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망망한 평원에 다섯개의 산으로 에워싸인 이 도시는 천연의 난공불락 요새인 셈이다. 


지혜로운 이는 왜 집을 버렸는가. 

그는 왜, 무슨 생각에서 미련없이 집을 나왔는가. 

그가 집을 벌니 그 내력을 여기 적으리라. 


이 집착의 생활은 고통이다. 

번거롭고 복잡하여 그 마음에 이는 것은

오직 먼지뿐이다. 


그러나 이 집착의 생활을 벗어나게 되면

우주 전체가 내 집이 된다. 

이를 깊이 생각하고

그는 집 없는 구도자의 삶을 택한 것이다. 


이런 삶을 택하게 되면

몸이 저지르는 모든 잘못과

말의 실수가 더 이상 없게 되며

그리고 자신의 삶은 다시 순결하게 정화될 것이다. 


지혜로운 이는 마가다국의 수도

산으로 에워싸인 곳 왕사성으로 갔다. 

기품도 늠름한 그분은

고행자의 생활을 하기 위하여 그곳을 갔다. 

* 왕사성: 현재의 이름은 라즈기로(Rajgir)이며(그러나 지금 왕사성은 화려하던 옛 자취는 간 곳 없고 초목과 잡초만이 우거져 있을 뿐, 그리고 그 사이사이로 몇 채의 인가가 널려 있을 뿐) 산 위에는 아직도 돌로 쌓은 옛 성곽의 일부가 그대로 남아 있다. 


마가다국의 왕 빔비사라는

그의 궁전 옥상에서 그(부처)를 봤다. 

풍채도 당당한 그를 보고 신하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대들이여, 저 사람을 보라. 

멋지고 장엄하고 수려한 사람이

모습도 당당하게 앞만 보며 가고 있다. 


그는 오직 아래만 보면서 걸어가고 있구나. 

저 사람은 필시 비천한 가문의 출신은 아닐 것이다. 

그대들이여, 저 사람의 뒤를 따라가 보라. 

어디로 가는지 잘 살펴보라. 


왕의 어명을 받은 사람들은 그의 뒤를 쫓아갔다. 

'그 수행자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그리고 어디쯤에서 살고 있는가.'

이렇게 생각하면서. 


그는 몸을 잘 절제하면서

깊이 생각에 잠겨 흩어지지 않는 자세로 

이 집 저 집 밥을 얻으러 다녔다. 


그는 탁발을 끝내고 시가지를 빠져나가서

판다바 산으로 올라갔다. 


그가 그의 거처로 돌아가는 것을 보고

왕의 사자들은 그에게 가까이 갔다. 

그리고 그 중 한 명이 왕궁으로 돌아가 

왕에게 이를 알렸다. 


전하, 그 수행자는 판다마 산의 동쪽에 있는 

한 동굴 속에서 호랑이처럼, 황소처럼,

그리고 사자처럼 앉아 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대왕 빔비사라는

장엄한 수레를 타고 급히 판다바 산으로 갔다. 


왕은 올라갈 수 있는 데까지 수레를 타고 올라갔다. 

길이 험하여 수레가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는데서부터는

왕은 손수 수레에서 내려 걸어 그에게 가까이 갔다. 


왕은 먼저 그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인사가 끝나고 나서 잠시 후

왕은 이렇게 말했다. 


수행자여, 그대는 아직 젊음으로 충만해 있다.

이제 막 인생의 문에 들어선 젊은이여, 

그 용모가 단정한 것으로 보아

그대는 필시 어느 고귀한 왕족임이 분명하다.


나는 그대에게 군의 총사려관직을 주리라.

그리고 많은 재물을 주겠노라. 

내 선물을 즐거이 받아라. 

젊은이여, 그대는 어느 가문에서 태어났느냐. 

* 여기 빔비사라 왕의 제의는 매우 중요한 뜻을 포함하고 있다. 마가다국은 북쪽에 있는 베샤리국과 코살라국을 상대로 전쟁을 한 일이 있다. 그리고 석가족의 나라인 카빌라국은 코살라국(현재의 인도 웃다 푸라 데쉬 주 지역)보다 더 북쪽에 위치해 있으므로 빔비사라 왕이 석가족의 왕자에게 군사원조와 경제원조를 제의하고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빔비사라 왕의 속셈은 남쪽의 마가다국(현재의 인도 비하르 주 지역)과 북쪽의 카빌라국이 합하여 일시에 여러 나라(당시 인도는 크고 작은 16국으로 나누어져 있었다)를 공격하려는 연합전술을 펴려는 것이다. 부처님은 이 제의를 거절했다. 그는 이미 세속을 포기하고 출가수행자가 됐기 때문이다. 


스승의 대답:

대왕이여, 저 히말라야의 산 밑에

정직한 한 민족이 살고 있으니

이 민족은 예로부터 부와 용기로 이름이 있는 민족이다. 


이 민족의 성은 '태양의 후예'이며

석가족(Sakiya)으로 알려져 있다. 

대왕이여, 나는 그 가문에서 태어났다. 

* 스스로 '태양의 후예'라 칭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태양숭배의 흔적이 엿보인다. 중세 인도의 왕가들은 '태양의 후예'라 칭하는 왕가와 '달의 후예라 칭하는 왕가가 있었다. 


그리고 내가 부귀영화를 버리고

수행자가 된 것은

결코 욕망을 충족시키고자 함이 아니다. 


욕망에는 필경 불행이 뒤따른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이 욕망의 세상을 거부해 버린 그 행복을 만끽하면서

나는 부지런이 노력하며 나아갈 것이다. 

그지없는 마음의 저 평안 속에서. 






 




 




Posted by 파노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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